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 이후에 사실상 4년간의 휴전에 돌입하게 된다.
명나라의 입장에서 그동안 사대를 했던 조선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겠지만, 일단 자국의 영토에서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 조선에 참전했던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일단 평양과 한양을 탈환했는데 그 와중에 일본군의 조총의 위력을 경험하고 되도록 더 이상 싸우는 것을 피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말들이 역병에 걸리게 되어서 12,000필의 말이 죽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졸지에 요동 기병이 요동 보병으로 바뀐 것이다]
일본군의 입장에서도 역시 상황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임난 초기에 한양까지는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갔지만 평양까지 점령한 이후에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양성을 후퇴한 이후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전력의 손실도 컸기 때문에 일단 남쪽으로 후퇴한 뒤에 왜성으로 들어가서 추스르기에 바빴을 것이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국토가 초토화, 황폐화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참전한 명나라를 먹여살리는 부담감이 가중되었다. 참전한 명나라가 제대로 싸워서 전쟁을 빨리 끝내주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일본군보다 더 심한 약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나라 빗은 참빗이고 일본의 빗은 얼레빗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다.
임진왜란 전에 150만결이었던 조선의 토지가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이 양전사업으로 조사한 토지는 30만결로 줄어들어 있었다. 조선의 백성들의 삶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각 도의 인민이 떠돌아 살 곳을 정하지 못해 굶어죽는 송장이 잇달았다. 마침내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러 아이를 잃은 자가 많았고, 산과 숲에 풀잎이며 소나무 느릅나무의 껍질과 줄기도 모두 없어졌다. 『난중잡록』
왜적이 한양을 점령한 지 벌써 2년, 온 국토가 쑥밭이 되어 농사지을 땅도 남아 있지 않은 까닭에 백성들은 굶어 죽는 것이 다반사였다. 내가 동파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성안의 백성들이 서로 밀고 끌며 모여들었는데 그 수가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한편 마산 가는 길에 죽은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는 아기를 본 사 총병(사대수)은 아기를 데려다 기르기 시작했다. 『징비록』
1592년 임진년의 이순신의 해전에서 조선군 사망자는 39명뿐이었다. 그런데 이순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바로 전염병이었다. 특히 수군들은 전염병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진중의 군사들이 태반이나 전염되어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더구나 군량이 부족하여 계속 굶게 되고, 굶던 끝에 병이 나면 반드시 죽게됩니다. 군사의 정원은 매일 줄어드는 데 다시 보충할 사람이 없습니다. 신이 거느린 수군만 헤아려 보아도 사부와 격군을 합해 원래 6,200여 명 중에 작년과 금년에 전사한 수와 2, 3월부터 오늘까지 병사자가 600여 명이나 됩니다. 이들 사망자는 모두 건강하고 활을 잘 쏘며 배도 잘 부리는 토병과 포작들이며, 남아 있는 군졸들은 조석으로 먹는 것이 2~3홉이라, 궁색하고 고달픔이 극도에 달하여 활을 당기고 노를 젓기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임진장계」
이순신은 휴전기간에 왜군이 아닌 전염병과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된다.
[난중일기 1594년 3~4월의 기록]
- 초5일, 맑다. 새벽에 겸사복을 당항포에 보내어 적선을 얼마나 쳐부수고 불태웠는지 살폈다. 그랬더니 우조방장 어영담이 급히 보고하기를 “적의 무리가 우리 군사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밤을 타서 도망하여, 빈 배 17척을 남김없이 불태워 버렸습니다”고 하였다.
- 초6일, 맑다. 명나라 군사 두 사람과 왜놈 여덟이 패문을 가지고 들어왔기에, 명나라 군사와 공문을 보낸다고 하였다. 패문을 받아다가 살펴보았더니, 명나라 도사부 담종인이 적을 치지 말라고 하였다. 나는 심기가 매우 괴로워져서 앉고 눕기조차 불편하였다. 저녁에 우수사와 명나라 병사를 면접하라고 보냈다.
- 초7일, 맑다. 몸이 매우 괴로워 뒤척이는 것조차 어려웠다. 공문을 아래 사람을 시켜 만들도록 하였더니 그 꼴이 말이 아니었다. 원 수사에게 손의갑을 시켜 지어 보내도록 하여쓰나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병을 무릅쓰고 일어나 내가 글을 짓고 정사립에게 쓰게 하여 보냈다. 오후 2시쯤 출발하여 밤 10시쯤 한산도 진중에 이르렀다.
- 초8일, 맑다. 기운이 조금 나은 듯하여 따뜻한 방으로 옮겨 누웠다.
- 초10일, 맑다. 병세가 점차 나아졌다. 그러나 열기가 올라와서 찬 것만 마시고 싶었다. 저녁에 비가 오기 시작하여 밤새 그치지 않았다.
- 11일 큰 비가 하루 내내 내리다가 저물 무렵에 개었다. 병세가 크게 나아지고 열도 가라앉았다. 정말 다행이다.
- 12일 맑았으나 큰 바람이 불었다. 몸이 매우 괴로웠다. 영의정에게 편지를 쓰고 계본도 깨끗이 써서 끝냈다.
- 13일 맑다. 아침에 계본을 통하여 보냈다. 몸은 점차 나아지는 듯하였으나 기력은 몹시 약해졌다. 회와 송두남을 내보냈다. 오후에 원수사가 와서 자기의 잘못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장계를 다시 가져오게 하여 원사진, 이응원 등이 가짜 왜적을 목 베어 바친 대목을 고쳐 보냈다.
- 14일, 비가 계속 내렸다. 기운이 나아지는 듯했으나 머리가 무겁고 개운하지 않았다. 저녁에 광양 현감, 강진 현감, 배 첨사가 같이 갔다. 충청 수사가 벌써 신장이 도착하였다고 한다. 하루 내내 평안하지 않았다.
- 15일, 빗발은 그쳤으나 바람이 세게 일었다. 미조항 첨사가 돌아간다고 보고하였다. 하루 내내 끙끙 앓았다.
- 16일 맑다. 몸이 몹시 괴로웠다. 우수사가 보러 왔다. 충청수사가 전함 아홉 척을 거느리고 진영에 도착하였다.
- 17일 맑다. 기운이 썩 나아지지 않았다. 변유형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순천 부사도 돌아갔다. 해남 현감이 새 현감과 교대하려고 나갔다. 황득중 등이 매복하려고 거제도에 들어갔다. 탐색선이 들어왔다.
- 18일 맑다. 몸이 몹시 불편하였다. 남해 현감 기효근, 소비포 만호, 적량 만호, 보성 군수가 보러 왔다. 기효근은 볍시 파종하는 일 때문에 현으로 돌아갔다. 보성 군수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말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낙안의 유위장과 향소를 잡아 가두었다.
- 19일 맑다. 몸이 불편하여 하루 내내 끙끙 앓았다.
- 20일 맑다. 몸이 불편하였다.
- 21일 맑다. 몸이 불편하였다. 녹명관으로 여도 만호, 남도 만호, 소비포 권관 등을 임명하였다.
- 22일 맑다. 기운이 좀 나아진 듯하였다. 원수의 공문이 돌아왔는데 명나라 지휘 담종인의 자문과 왜장의 서계를 조 파총이 가지고 갔다고 하였다.
- 23일 맑다. 몸이 여전히 불편하였다. 방답 첨사, 흥양 현감, 조방장이 보러왔다. 견내량 만호가 미역 53다발을 따왔다. 발포 만호도 보러 왔다.
- 24일 맑다. 몸이 조금 나아지는 듯하였다. 미역 60다발을 따왔다. 정사립이 왜놈의 목을 베어 왔다.
- 25일 맑다. 흥양 현감, 보성 군수가 나갔다. 사로잡혔던 아이가 왜의 진중에서 명나라 장수의 패문을 가지고 왔기에 흥양 현감에게 보냈다. 늦게 활터 정자에 올라갔다가 몸이 몹시 불편하여 일찍 숙소로 내려왔다. 저녁에 아우 우신과 회와 변존서, 신경황이 왔는데 어머님이 평안하시다는 이야기를 자세히 전했다. 다만 산소가 모두 들불에 타버려 아무도 끄지 못했다고 하니 슬프기가 이를 데 없다.
- 초8일 맑다. 몸이 불편하였다. 저녁 때 시험장에 올라갔다.
- 초9일 맑다. 아침에 시험을 끝내고 결과를 알리는 방을 내다 붙였다. 큰 비가 왔다. 조방장 어영담이 세상을 떠났다. 이 슬픔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제2차 당항포 해전의 영웅인 어영담이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와중에 꿋꿋하게 전염병도 피해가는 원균은 뭐지?] 이순신이 1595년에 수군의 상황을 정리해서 보고한 내용이 선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주사를 조사한 적간 성책을 상고해 보았더니, 큰 배와 작은 배가 도합 84척이고, 사군과 격군은 도합 4천 1백 9명인데, 병든 자가 절반이 넘습니다. 「1595년 선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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