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단군을 승려 일연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남한의 강단사학도 아직까지 단군을 신화로 보고, 고조선은 아무리 빨라야 서기전 10세기 이전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논리로 단군조선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단군을 부인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한 것을 남한의 식민사학자들이 그대로 추종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아무리 중국을 사대했어도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것을 부인하는 학자는 없었다.
『삼국유사』의 가장 첫 부분에는 왕의 계보를 적어놓은 왕력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이 왕력에 의하면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조’의 ‘동명성왕은 추모왕이라고도 한다. 단군의 아들이다’라고 써 놓았다. 고구려는 단군의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라는 말이다. 부여도 마찬가지로 어떤 기록에서는 해모수를 단군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부여도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주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고구려는 BC 37년에 건국했는데 이듬해 서기전 36년에 비류국을 점령하게 된다. 당시 비류국의 왕은 송양이라는 인물인데, 송양이 ‘‘나는 선인의 아들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고구려 동천왕 때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선인왕검의 터전이다’라고 말했는데, 선인왕검이 바로 단군왕검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옛날 단군조선의 터전에서 일어선 나라들은 전부 다 “단군의 후예”, 단군의 핏줄이라는 혈통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단군의 이야기를 보면, ‘하늘의 자손’이라는 사상이 등장한다. 하늘에 환인이 있고 환인의 서자 환웅이 등장한다. (서자라는 것은 첩에서 난 자식이라는 뜻이 아니라 여러 아들 중에 한 명이라는 뜻이다) 환웅이 인간 세상에 뜻을 두고 내려와서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신시를 세우는데, 이때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내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 세상을 다스릴 때 가장 필요한 360가지 일을 관장하는 것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
중국 민족사의 시작은 사마천이 쓴 『사기』에 시작되는데 거기에는 중국의 한족, ‘하화족’의 시조를 황제로 설정하였다. 이 황제가 동이족의 시조라는 치우와 싸우는 것이 중국사의 처음으로 설명한 것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와 주석, 그 다음에 『산해경』이라는 책들을 보면, “치우가 풍백과 우사를 불렀다”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중국에서도 치우가 동이족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단군사화에 담겨있는 내용들을 동이족이 갖고 있는 전통사상이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군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곰의 존재는 무엇인가? 이것은 호랑이와 곰을 토템으로 삼는 부족을 말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하는 환웅족과 곰을 토템으로 삼는 부족과의 연합으로 단군조선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나라 다스리는 이념이 두 가지 등장한다. 홍익인간(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것)과 제세이화(이치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대부부의 건국사화에는 전부 다 칼이 등장한다. 이민족이 쳐들어와서 죽이고 정복하는 것이 많은 건국사화의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단군의 건국사화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나라를 이치로써 다스리는 것이다. 이것은 상식, 즉 사람들이 보통 갖고 있는 ‘그렇다, 그것이 옳다’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힘이나 이치에 안맞는 것을 가지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를 움직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단군의 건국정신은 널리 세상을 이롭게하는 것이고, 누가 보더다도 합당한 이치로써 다스리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건국사화는 처음 시작부터 서로가 합리성에 토대를 둔 그런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천손사상’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도 천손사상을 갖고 있지만 배타성이 강하다. 그런데 우리의 천손사상은 배타성이 없다.
우리 천손사상의 핵심은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나의 시각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데, 그것이 배타적이지 않고 어거지 쓰는 것도 아니며, 이치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그런 이상적인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 단군조선의 건국 사화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이라 할 수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