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선자의 등장]
자하 : 이랑신과 남천문의 사대천왕이셨군
이랑신 : 너와 네 언니 청하선자는 일월명등의 심지가 아니냐? 어찌 함부로 하늘을 떠나서는 네 자청보검을 뽑는 자를 낭군으로 삼겠다고 하느냐!
남천문 : 넌 신선인데 감히 그런 속된 생각을 하다니! 요괴가 네 보검을 뽑기라도 하면 우리 신선들은 웃음거리가 될 거 아니냐?
자하 : 신선도 좋고 요괴도 좋아. 보검은 내 마음 속에 있는 사람만이 뽑을 수 있지. 그가 요괴라도 난 평생 그를 따를 거야. 그렇지 않으면 옥황상제를 시켜준대도 싫어.
이랑신 : 닥쳐라! 어리석은 것. 하늘을 대신해 신선계에서 없애주마!
자하 : 신선보다는 원앙이 그리우니 마음대로 해라.
[월광보합을 소유하게 된 자하선자]
자하 : 월광보합이 생겼으니 청하 언니가 쫓아와도 걱정 없겠네. (지존보에게) 나와! 뭐가 부끄럽다고 숨어있어?
지존보 : 이 월광보합은...
자하 : 내 꺼야! 산에 있는 건 다 내 거라고 말했을 텐데. 어떡하려고?
지존보 : 아니에요... 곧 가신다고 들었는데... 나도 데려가줘요.
자하 : 너도 쫓기고 있니?
지존보 : 사람을 구하러 가야 해요.
자하 : 누구를?
지존보 : 내 마누라요. 백정정이라고 아실 텐데...
자하 : 몰라.
지존보 : 곧 알게 될 거예요. 백정정이 당신 제자가 될 거니까. 그리고이 월광보합은...
자하 : 내 꺼야.
지존보 : 안다고요. 내가 당신한테 준 거죠. 나중에 당신이 다시 나한테 줬죠. 그래서 내가 여기로 돌아온 거죠. 그리고 다시 당신한테 돌려준 거고, 알겠소?
자하 : 알겠다. 미쳤구나?
지존보 : 아무튼 날 데려가야만 해요.
자하 : 내가 왜 그렇게 잘해줘야 하지?
지존보 : 내 주인이니까요. 당신이 떠나면 나 혼자 남아서 뭐하죠?
자하 : 정말이야? 앉아! 바닥에!! 손! 착하지. 이따가 새 옷을 사줄테니 부인 만나러 가라. 짖어봐!
[청하선자의 등장]
지존보 : 선자님... 빨리 나와봐요. 달이 떴어요. 갑시다.
청하 : 어디로?
지존보 : 안 갈 거요? 그럼 나 혼자 가게 월광보합을 줘요.
청하 : 그게 뭔데?
지존보 : 내일 밤까지 기다릴 수 없어요. 빨리 서둘러요. 무서운 언니가 쫓아올지도 모르잖아요.
청하 : 못된 것, 사방에 내 욕을 떠들어댔군.
지존보 : 무슨 소리죠?
청하 : 내가 바로 그 못된 것의 언니다! 헛소리를 믿다니! (지존보를 때린다)
[자하선자와 청하선자]
자하 : 이봐, 지존보. 어젯밤에 왜 나 안 깨웠어? (지존보, 자하를 피해 다닌다) 왜 그래? 어딜 가는 거야? 서지 못해! 앉아! 의자에! 왜 그래? 왜 그렇게 쳐다봐? 뭘 봤는데 그래? 언니를 본 거야? 진짜 우리 언니를 봤군! 이렇게 빨리 쫓아올 줄이야. 너한테 뭐라고 했어? 언니 말을 믿지 마, 정신병자라고. 전생에서 우리는 너무 심하게 싸워 관음보살이 우리를 심지로 만들어 수행을 해서 원한을 풀도록 한 거야. 유감스럽게도 결과는 정반대였지. 전보다 사이가 더 나빠져버렸어.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빨리 떠나야 해! 내가 정신분열이라고 생각하나 본데, 내가 아니야. 아까 나타난 건 정말 언니라고. 못믿겠다 이거지? 손 이리 좀 줘봐. 손을 서로 묶어놓으면 알게 될 거야.
[청하선자에게 얻어맞는 지존보...]
지존보 : 오늘밤은 달이 안 뜨겠군요.
청하 : 그래? 못된 것,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지존보 : 이름이 뭐요?
청하 : 임가다!
지존보 : 우리 형이 말했던 임청하 씨군요.
청하 : 네 형이라고?
지존보 : 어제 당신에게 맞았던 지존보 말이에요.
청하 : 넌 누군데?
지존보 : 쌍둥이 동생인 지존옥이오.
청하 : 지존보와 지존옥? 날 속이는 거지?
지존보 : 눈치 빠르시네요. 사실 우리 형의 본명은 진한이에요. 난 진상림이오.
청하 : 여기서 뭐하는 건데?
지존보 : 당신을 사모하오.
청하 : 날 사모한다고?
지존보 : 사모하는 정도가 아니라 당신을 잃을까봐 이렇게 내 몸에 묶어놨지 않소. 내 사랑을 받아주시오. 둘이 함께 멀리 날아갑시다.
청하 : 날 사랑하면 대가를 치러야 해! (지존보를 때린다)
[자청보검을 뽑은 지존보...]
지존보 : 말도 마요. 당신을 끔찍이 미워합디다. 오늘밤 당신을 죽였다고 할 테니, 그 대신 언니가 믿게 증표를 줘요. 목걸이, 노리개, 보석이나 아니면 월광보합이라도...
자하 : 좋아, 그런 거 말고... 이 자청보검을 보여주면 틀림없이 믿을 거야.
지존보 : 그것도 좋죠. (자청보검을 뽑는다)
자하 : (생각) 저 사람이었네. (지존보에게) 날이 저물기 전에 시장 구경이나 하자.
[지존보에게 고백하는 자하선자]
지존보 : 왜요?
자하 : 쉿
지존보 : 왜 그래요?
자하 : 가슴이 너무 뛰어.
지존보 : 그럼 어쩌죠?
자하 : 가자
지존보 : 왜 그래요?
자하 : 내 배필감이 근처에 있어.
지존보 : 직접 봤소?
자하 : 그건 아니고. 내 자청보검이 ‘뚜뚜’하고 신호를 보내줬어.
지존보 : 어디서 난다는 거요?
자하 : ‘뚜... 뚜... 뚜...’ 들리잖아.
지존보 : 그건 당신 입에서 나는 소리잖아요.
자하 : 못 들으니까 내가 소리를 내준 거지. 무서워. 거짓말 아냐. 정말 무섭단 말이야!
지존보 : 뭐가 무서운데?
자하 : 하늘에서 맺어준 인연이니 무서울 수밖에
지존보 : 또 시작이군...
자하 : 그래, 내 심장이 뛰고 있어. 보검도 소리를 내고 있고. 어쩌지? 그에게 뭐라고 말하지? 어떻게 해?
지존보 :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말하는 수밖에요.
자하 : 날 싫어하면? 부인이 있으면 어쩌지?
지존보 : 뭘 그렇게 따져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면서...
자하 : 정말?
지존보 : 하늘의 뜻을 누가 거역해요.
자하 : 맞아, 그래... 그 사람 왔어.
지존보 : 설마 난 아니겠죠?
자하 : 바로 당신이야!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말할지 고민했는데... 자기 눈치 한번 빠르네.
지존보 : 하지만 난 아내가 있는데...
자하 : 알아, 어쩔 수 없잖아.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서... 부인을 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나와 가는 거야.
지존보 : 그것도 좋지!
자하 : 좋아?
지존보 : 좋다고요.
자하 : 그럼 지금부터 사랑하기로 해.
지존보 : 어려울 것 없지요.
자하 : 그럼 뽀뽀부터 해줘.
지존보 : 좋지, 듣기만 해도 흥분되는 걸...
자하 : 그럼... (지존보가 자하를 밀친다)
지존보 : 월광보합을 꺼내봐요.
자하 : 날 속였어. 방금 한 말도 다 거짓이지?
지존보 : 진짜요, 월광보합을 내봐요. 내 마음을 꺼내서 보여줄까요?
자하 : 내가 직접 보면 돼!
[지존보의 심장에 들어간 자하선자]
자하 : 심장이 야자같이 생겼네요!
심장 : 아가씨, 난 생긴 건 좀 못생겼어도, 마음씨 따뜻하고 거짓말을 못해요.
자하 : 그럼 솔직히 말해줘요. 그이가 부인을 정말 사랑하나요?
[지존보와 헤어지는 자하선자]
자하 : 화내지 마. 장난 좀 한 것 뿐이니까. 보합은 언니가 가지고 있어. 언니가 너에게 돌려줄 거야.
지존보 : 어찌 감히 누님께 화를 내겠어요? 관음보살님으로 모셔도 부족한걸요.
자하 : 날이 어두워졌으니 언니 찾으러 갈 거야. 행운을 빌께.
지존보 : 나에게 행운이 올 리가 없지.
[잔소리가 심한 당삼장]
관음 : 오공, 넌 온갖 핑계를 대고 있지만 불경을 가지러 갈 생각이 전혀 없구나. 사부님과 날 모욕한 죄를 용서할 수 없다.
삼장 : 관음누님, 그건 잘못하는 거요. 오공이 나를 먹으려는 것은 생각뿐이지 아직 실행에 옮기진 않았소. 게다가 증거도 없이 죄가 성립되겠소? 나를 먹은 다음에 충분한 증거를 대서 벌을 줘도 늦지 않아요.
관음 : 당삼장이 말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말이 많을 줄은 몰랐소. 원숭이를 다스리라고 준 금강권은 사용하지도 않고.
삼장 : 금강권은 크기가 안 맞아요. 앞이 무겁고 뒤가 가벼우며 왼쪽은 넓고 오른쪽은 좁아 그걸 차면 매우 불편하고 밤새 잠을 못 자 나까지 맘이 안 편해요. 비록 원숭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소. 다들 내가 동물을 학대한다고 할 거예요. 금강권은... 작년에 진가촌의 대장장이를 보니 기술도 좋고 값이 싼 게 바가지도 안 씌우던데 그 사람을 소개해 줄테니 다시 맞추는 게 어떻소?
손오공 : 닥치라고!
관음 : 닥쳐라!
[손오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당삼장]
관음 : 내가 하늘을 대신해 벌을 내리마.
삼장 : 관음보살님, 자비를 베푸시오. 잘못 없는 자가 어디 있겠소? 저 아이는 내 제자니... 제자가 잘못하는 데는 사부도 책임이 있소. 관세음보살님, 손오공을 용서하시오.
관음 : 저 아이를 그냥 두었다가 옥황상제님을 무슨 낯으로 뵙겠어요?
삼장 : 그럼 할 수 없군요. 옥황상제님께 잘 말씀드려주시오. 소승이 대신 벌을 받겠소.
관음 : 뭐라고?
삼장 : 내가 지옥에 안 가면 누가 가겠소? 관세음보살님, 부탁하오. 내가 이렇게 해서 어리석은 제자를 깨우쳐 부처님의 자비로움에 보답할 수만 있다면...
관음 : 선재라... 선재라... 오공아, 언젠가는 네 사부님의 살신성인 정신을 깨닫기를 바란다.
[지존보... 완벽한 거짓말]
지존보 : 당시 칼날과 내 목의 거리는 불과 0.01cm... 그러나 바로 잠시 후 검의 여주인은 나를 완전히 사랑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 거짓말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평생동안 셀 수 없는 거짓말을 했지만 이번이 가장 완벽한 것 같다.
자하 : 앞으로 반 걸음만 나오면 넌 죽어.
지존보 : 그렇게 해야지. 난 죽어야 되오. 진정한 사랑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난 소중이 여기지 않았지. 그걸 잃었을 때... 비로소 크게 후회했소. 인간사의 가장 큰 고통은 바로 후회요. 당신의 칼로 내 목을 잘라 버리시오. 더 망설일 필요 없소. 하늘이 내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난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줄 거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만약 사랑에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자하 : 당신 부인한테 어떻게 말할 거예요?
지존보 : 말해야지. 그래서 월광보합을 가지고 당신과 함께 가서 말할 거요. 날 손가락질해도 상관없소. 후세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날 욕해도 혼자서 그 짐을 지겠소.
자하 : 날 속이는 건 아니겠죠?
지존보 : 월광보합을 가져갈 수 없는 못난 내가 원망스럽소.
자하 : 내가 도와줄게요.
지존보 : 아니요, 너무 위험하오.
자하 : 갖기 싫어요?
지존보 : 갖고 싶소!
[귀염둥이 철선공주]
철선공주 : 나한테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알지?
지존보 : 말씀드렸잖아요, 형수님.
철선공주 : 나를 형수라고 불렀겠다?
지존보 : 죄송합니다, 우 부인.
철선공주 : 옛날에 나랑 달 구경할 때는 귀염둥이라고 하더니... 새 여자랑 살더니 날 우 부인이라고?
지존보 : 귀염둥이?
철선공주 : 여기까지 달려온 게 저 우가 때문인 줄 알았어? 양심도 없는 더러운 원숭이 당신 때문이라고. 상관 안 할 테니 오늘밤 11시에 여기서 기다려 줘. 할말이 있으니까.
[철선공주의 경고]
철선공주 : 내가 당신이라면, 남편이 첩을 들인다면 죽어버리겠어.
우마왕 : 정말로?
철선공주 : 물론! 그 전에 당신을 죽이겠지만!
[감옥에서 고집부리는 당삼장]
당삼장 : 난 갈 수가 없다.
사오정 : 네? 왜 못 가시는데요?
당삼장 : 우리 네 사람이 서역에 경을 가지러 가려면, 어려운 일이 많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서로 협력을 하지 않아서 요괴들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왕 그렇게 된 거... 감옥 안이나 밖이나 뭐가 다르겠느냐? 바깥 세상이 나에겐 큰 감옥에 지나지 않는다.
[자하를 데리고 탈출하는 지존보]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자하를 데리고 도망치던 지존보... 우마왕의 여동생 향향을 만난다)
지존보 : 향향! 여긴 어떻게 왔소? 손에 웬 피가 흐르지?
향향 : 이 피는 네가 안고 있는 여자의 것이다... 저 여자가 자는 틈에 내가 찔렀다. 저 여자를 죽이지 않으면, 당신이 내게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지존보 : 당신... 억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소? 하늘의 뜻이 그렇다면 따라야지.
향향 : 닥쳐! 하늘이 당신한테 저팔계를 사랑하라고 하면, 그럴 수 있어?
지존보 : 정말 그래야 할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잖소?
향향 : 좋아. 하늘에 물어볼 필요도 없지. (이형환영대법)
[저팔계의 몸 속에 들어간 청하]
지존보 : 자하! 정신차려!
자하(저팔계) : 대사형, 날 끌어안고 뭐 하는 거예요?
지존보 : 저팔계?
자하(저팔계) : 그래요.
지존보 : 자하는?
저팔계(청하) : 진상림...
지존보 : 청하? 설마 농담이겠지...
자하(저팔계) : 큰일 났다. 가슴이 배꼽으로 내려왔어요.
저팔계(청하) : 내 모습을 싫어하는 건 아니겠죠?
지존보 : 물론 아니지. (구토)
저팔계(청하) : 날 싫어하는 게 분명해! 좋아, 헤어져요!
지존보 : 시간을 좀 줘요. 토하고 나면 곧 익숙해질거요.
저팔계(청하) : 좋아요, 믿을게요. 시간을 줄 테니 다 토하고 나서 말해요.
지존보 : 이제 됐어요. (다시 토한다)
자하(저팔계) : 나무랄 것 없어요. 내가 봐도 토할 것 같으니.
저팔계(청하) : 다 돼지 같이 생긴 너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까지 토하겠어? 날 생각해서 그러는 거니 저이에게 시집갈 거야. (지존보 토한다) 따뜻한 가정을 갖게 해주고 저이의 아이를 많이 낳을 거야. (지존보 구토...)
(저팔계의 몸에는 청하만 들어간 것)
지존보 : 자하, 그 안에 있는 거야?
저팔계(청하) : 흥, 못된 것!
자하 : 드디어 나타나셨군. 어떻게 된 거야? 한동안 안 보이더니 어떻게 이런 모양이 됐지?
지존보 : 월광보합은?
자하 : 깜박 잊고 안 가져왔네... 놀랬지?
지존보 : 이리 줘
저팔계(청하) : 잠깐만, 월광보합으로 뭘 하려고?
자하 : 나랑 멀리 떠날 거야. 이봐 뚱보, 그 사람을 놔줘!
저팔계(청하) : 상림 씨가 너랑 멀리 간다고? (자하가 방심한 틈을 타서 월광보합을 빼앗는다) 이제 그만 꿈 깨시지.
자하 :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저팔계(청하) : 날 사랑한다더니 이걸 갖고 자하와 떠나려는 거였군.
지존보 : 잠깐만... 결코 그게 아니오. 못 믿겠다면 이 썩을 물건을 버리면 되잖소.
저팔계(청하) : 좋아요! (월광보합을 버리려고 한다)
지존보 : 기다려요! 그렇다고 너무 충동적일 필요는 없지.
저팔계(청하) : 뻔뻔스럽게 죽어도 아니래? 던져버릴꺼야! (월광보합을 던지고... 이것을 우마왕이 가로챈다)
[수렴동으로 오게된 지존보]
지존보 : 날 왜 이 동굴로 데려왔죠?
도둑 : 내가 데려온 게 아니오. 형씨가 거의 쓰러져가는 와중에도 우릴 여기로 안내했소. 정정이 많이 그리웠나 봐요. 그래요, 정신을 잃고 정정이라는 이름을 98차례나 불렀다오.
지존보 : 정정은 내 아내예요.
도둑 : 자하라는 이름도 무려 784차례나 불렀다오.
지존보 : 예?
도둑 : 784차례나 부르다니... 자하가 당신에게 많은 빚을 진 것이 분명해.
[하늘이 정해준 낭군을 기다리는 자하]
우마왕 : 오자마자 하루 종일 월광보합만 내놓으라는 게 말이 되나? 나랑 결혼하자고 하면 계속 미루기만 하면서 나한테 시집올 생각은 있는 거요?
자하 : 그럼요.
우마왕 : 당신 동생 미친 거 아니야? 밤새 중얼대기만 하니...
저팔계(청하) : 미친 건 아니지만 약간 돌았다고 할 수 있지.
우마왕 : 돌았어도 상관없어. 자하가 한다고 했으니 칠일 후 결혼할 거요.
저팔계(청하) : (우마왕이 나간 후) 정말 저 자한테 시집갈 거니?
자하 : 거짓말이지. 우리 낭군님이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저팔계(청하) : 그 교활한 자가 데리러 올 걸 믿는다고? 정말 나타난다면 그야말로 축할 일이군. 설사 데리러 온다고 해도 무슨 수로 널 우마왕의 손에서 빼내지?
자하 : 하늘이 그 사람에게 자청보검을 뽑게 한걸 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게 분명해. 틀림없어! 수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볼 모습으로 그가 나타날 거야. 멋진 갑옷에 치장을 하고 오색 구름을 타고 와서 날 데려갈 거야.
저팔계(청하) : 그러니까 돌았다고 하지.
자하 : 돈 게 아니라, 높은 이상이야.
[백정정과 결혼하려는 지존보]
도둑 : 노형, 백정정과 이렇게 빨리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소.
지존보 : 그래요, 나도 예상 밖이요.
도둑 : 정말 기쁜 일이오.
지존보 : 고맙소.
도둑 : 어젯밤 자면서 자하를 785차례나 부릅디다. 지난번보다 한 번이 더 많더군요.
[지존보의 꿈 속에 나타난 자하]
자하 : 어젯밤 거미에게 말을 전해달랬어요. 내가 당신을 그리워한다고요. 알고 있었어요?
지존보 : 당신은 알고 있소? 그 동안 당신을 속여왔소.
자하 : 속일테면 속이라지. 불나방은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불로 뛰어들죠. 불나방은 그렇게 어리석어요.
[자하와 백정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지존보]
지존보 : 포도, 이리 나와요.
도둑 : 노형을 감시하는 게 아니라,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뭔지 연구 중이었소.
지존보 : 노형, 강도 짓이나 잘 할 것이지 왜 갑자기 학문 타령이요?
도둑 : 강도도 공부가 필요해요.
지존보 :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잠이나 잡시다.
도둑 : 자하는 노형 마음 속의 느낌표요 아니면 마침표요? 아니면 머릿속에 가득 찬 물음표요?
지존보 : 자하는 그냥 아는 여자일 뿐이오. 그 동안 거짓말로 그 여자를 속였고 지금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뿐이오! 점점 싫어지고 있다고요. 난 내일이면 결혼하는 몸인데 뭘 어쩌란 거요?
도둑 : 싫어했던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 감정은 걷잡을 수 없죠.
지존보 : 싫어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죠? 이유를 좀 대봐요, 제발!
도둑 : 사람을 사랑하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지존보 : 필요없단 말이오?
도둑 : 필요하냐고?
지존보 : 필요없단 말이오?
도둑 : 필요하오?
지존보 : 필요없소?
도둑 : 연구를 해보자는 건데 뭘 그렇게 정색하오? 이유가 필요한가?
[편지를 남기고 떠난 백정정]
(백정정은 편지만 남겨놓고 떠나간다)
당신 양심이 말해줬어요.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닌 다른 여자라고.
그 여자가 당신 양심에 남겨놓은 물건을 보고... 당신이 오백 년이 지나 다시 찾는 것은 내가 아닌... 그 여자라는 걸 느꼈죠. 이건 하늘의 뜻이라는 걸 믿어야 해요. 전설 속의 인연이기도 하겠죠.
[춘삼십낭에게 죽임을 당하는 도둑들과 지존보]
춘삼십낭 : 내 사매 백정정이 여기 온 거 다 알아. 지금 어디 있지?
도둑들 : 몰라요.
지존보 : 얼마나 큰 원한이 있길래... 이렇게 오랫동안 당신 사매를 용서하지 못 하오?
춘삼십낭 : 이것 봐, 손오공. 그애 하고 친하잖아. 어디 갔는지 빨리 말해.
지존보 : 어디 있는지 몰라요.
춘삼십낭 : 모른다고? 듣다하니 당신 마음이 약하다던데... 저쪽은 네 친구렸다? (도둑 두 명을 죽인다) 알아 몰라?
지존보 : 사람을 죽일 거면 날 죽이시오. 저 사람들은 당신 사매를 몰라요. 무고한 사람들이오. (그러나 춘삼십낭은 도둑을 죽인다)
춘삼십낭 : 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존경하지. 그렇게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주마.
지존보 : 잠깐만요.
춘삼십낭 : 죽는 걸 겁 안내는 줄 알았는데?
지존보 : 어차피 죽을 목숨, 부탁 좀 합시다. 칼을 재빨리 뽑아서 제대로 찌르면 사람을 찔러도 즉시 죽지 않는다고 하던데... 눈도 똑똑히 보이고요. 이왕 하는 거 재빨리 해서... 내 심장을 꺼내 내가 볼 수 있게 해주시오.
춘삼십낭 : 무슨 소리냐?
지존보 : 한 친구가 내 심장에 뭘 두고 갔다고 해서요. 뭘 두고 갔는지 보고 싶소.
춘삼십낭 : 도통 알 수가 없어. 겁주는 거냐?
[요괴들에게 말을 거는 당삼장]
(당삼장이 좌우의 요괴들에게)
형제는 몇 명이냐? 부모님을 살아계시고? 난 그저 죽기 전에 친구를 사귀고 싶을 뿐이야. 그래서 요괴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자한 마음이 있어야 하지.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요괴가 아닌 사람에 가까운 도깨비야... 저 친구는 알았다는 군. 자네는 어떤가?
사람이나 요괴나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건 같단다. 다른 건 사람 멈마는 사람이고 요괴의 엄마는 요괴인 것 뿐... (듣고 있던 요괴는 ‘더 이상 못 듣겠어!’라고 외치며 칼로 자결한다... 당삼장이 왼쪽에 서 있는 요괴를 바라보면서 말을 건넨다...)
네 엄마 성이 뭐냐? (공포에 질린 요괴는 스스로 목을 맨다)
[깨달음을 얻은 지존보... 손오공의 탄생]
지존보 : 관음대사님. 이제 대사님의 말씀을 이해하겠어요. 전엔 사물을 육안으로 봤는데, 죽는 그 찰나에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어요. 모든 사물이 전에 없이 똑똑히 보이더군요. 그 여자는... 제 심장에 눈물 한 방울을 남겨 두었어요. 그녀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관음 : 속세의 일은 더 이상 연연하지 않겠지?
지존보 : 상관없어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고행길이니...
도둑들 : 좋은 말이오, 좋은 말이야. 노형, 잘 있었소?
지존보 : 세 분 친구에게까지 피해를 준 게 가장 걸립니다. 세 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었죠.
도둑들 : 그러게 말이오. 말도 마시오.
지존보 :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십년 오십 년씩 사람을 미워하고 심지어 오백 년을 증오한다는 겁니다. 어째서 그 정도로 사람을 미워하는 걸까요?
관음 : 그래서 당삼장이 불경을 구하러 가지 않느냐... 그 분은 경을 가져와 속세의 갈등을 화해시키려는 거다.
지존보 : 알겠습니다. 난 여기 남아서 할 일이 있으니 세 분은 어서 환생하러 가시오!
도둑들 : 알았소.
지존보 : 이번 생에서 세 분을 칼에 맞아 돌아가시게 했으니... 다음 생에서 신세갚을 기회가 있길 바라오.
도둑 : 세 번 갚는 거요?
지존보 : 뭐든 상관없소, 친애하는 포도님.
도둑들 : 자, 그럼 우린 이만... 잘 있어요...
지존보 : 멀리 안 나갑니다.
관음 : 다시 한번 일러두는데... 금강권을 쓴 다음부터는 더 이상 보통 사람이 아니니... 세속의 욕망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욕심을 품으면 금강권이 머리를 점점 조여서 큰 고통을 줄 것이다.
지존보 : 알았어요.
관음 : 금강권을 쓰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해라.
지존보 : 진정한 사랑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난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그걸 잃고 나서야 비로소 후회했네. 인간사의 가장 큰 고통은 바로 후회요. 하늘이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난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겠소. 사랑에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개과천선했음을 알리는 손오공]
지존보 : 사부님, 이 제자 그 동안 큰 잘못을 했습니다. 다행히 관음대사께서 제 잘못을 일깨워 주셔서 이제는 완전히 부처님께 귀의했습니다. 다시는 세속의 욕망에 연연하지 않고 사부님을 모시고 불경을 가져오는 임무를... 이 제자 열심히 수행할 것입니다.
당삼장 : 고맙구나. 마침내 개과천선했구나.
[자하를 모른척 하는 손오공]
자하 : 지존보, 드디어 왔군요.
손오공 : 아가씨... 난... 지존보라는 친구를 압니다. 자하선자라는 분 얘기도 하던데... 아가씨가 맞소? (자하가 다가서려고 한다) 멈춰요! 그 사람 맞느냐고 물었소. 맞는지 말해요.
자하 : 맞는데요.
손오공 : 그렇지! 지존보는 이미 예전의 곳으로 돌아갔다면서 아가씨도 하루빨리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란다고 전하래요.
자하 : 나 놀리지 말아요, 지존보.
손오공 : 다시 한번 말하죠. 내 이름은... 제천대성이라 하오. 이름 제대로 불러줘요.
[자신을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하는 자하]
자하 : 제천대성 손오공 맞죠? 불경 가지러 서역 안 가세요? 나도 데려가요.
손오공 : 그래... 여자를 데려가면 외로울 때 위안이 되겠지... 생각만 해도 정말... 안돼, 그럴 수 없어. 이리 와서 날 안아봐요... 당신, 날 못 봐줄 거야.
자하 : 봐줄 건데요...
손오공 : 내가 당신을 못 봐줘! 너무 못생겼어. 도와주는 의미에서 귀찮게 하지 말아줬으면 해.
자하 : 나한테 왜 이렇게 대하죠?
손오공 : 화났어요?
자하 : 화 낼 거예요.
손오공 : 그럼 울어봐요.
[자결하려는 자하... 말리는 손오공]
손오공 : 뭐 하는 거요?
자하 : 왜 그러는 거죠?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갑자기 웬 관심이죠?
손오공 : 관심이 아니라, 하는 짓이 딱해서 그렇소. 신선 노릇 이렇게 할거면 차라리 때려치우라고... 큰 일 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죽으려면 멀리서 죽어요... (우마왕이 파초선으로 성을 날려버리는 것을 막으려고 자리를 떠나는 손오공이 자하의 방울을 떨어뜨린다)
자하 : 또 속였어...
[손오공 대신 죽음을...]
(여의봉으로 땅을 지탱하고 있는 손오공에게 다가간 자하)
자하 : 나쁜 놈!
손오공 : 날더러 어쩌라고?
자하 : 나쁜 자식!
손오공 : 당신이 더 나빠
자하 : 마찬가지예요
손오공 : 넌 사람도 아냐! 이제 정신차려! 내가 아까 한 말 알아들었어?
자하 : 당신은 내가 더 이상 신선이 아니라는 거 알아요? 내가 한 가지 확실하게 깨달은 건,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거예요.
손오공 : 나한테 그런 쓸데없는 말 하지 말아요. 사람 잘못 봤다고 했잖아요!
자하 : 그럼 이 방울 어디서 났어요?
(이때 뒤에서 창을 들고 날아오는 우마왕... 손오공을 대신해서 창을 맞는 자하...)
손오공 : 자하...
자하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의 영웅이에요... 어느 날 오색구름을 타고 나를 색시로 맞으러 올 거예요... 앞부분은 맞췄지만, 뒷... 부분은 맞추지 못... 했어요...
[무사와 여인...]
지존보 : 내가 괜히 온 것 같군요.
자하 : 그걸 알기엔 너무 늦었어요.
지존보 : 추억으로 남겨두면 안되겠소?
자하 : 추억보다는 당신을 남겨두고 싶어요
지존보 : 그래 봐야 얻는 건 내 육체일 뿐... 내 마음을 가질 수는 없소. 난 이미 부인이 있는 몸... 우린 이루어질 수 없으니 그냥 보내 주시오...
자하 : 좋아요, 보내드리죠. 하지만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입맞춤해줘요.
지존보 : 아무리 그래도 이 몸은 석양의 무사... 당신이 하라는 대로 입을 맞추는 건... 내 명예를 더럽히는 거요.
자하 : 거짓말! 입맞추는 게 두려운 거죠? 당신은 날 사랑하니까! 당신이 이번에 날 거절한다면, 평생을 후회하며 살 거예요.
지존보 : 후회하더라도 어쩔 수 없소. 너무 늦게 만난 인연과 운명을 탓할 수밖에
(손오공이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지존보의 몸 속에 들어가서 자하와 입을 맞춘다)
지존보 : 평생 당신을 떠나지 않겠소. 당신을 사랑해. (자하는 뒤돌아 걸어가는 손오공을 바라본다) 뭘 보는 거요?
자하 : 저 사람이 이상하게 생겨서...
지존보 : 나도 봤소. 꼭 개처럼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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