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14] 삼국통일이라고? 그렇다면...
660년에 백제가 멸망하자 당나라는 직접 지배를 하기 위해서 웅진도독부를 설치한다. 663년에는 신라 지역에 계림도독부를 설치한다. 이것은 신라의 문무왕을 당나라의 지방관으로 임명한 것과 같다. 결과적으로 백제 땅에 있던 웅진도독부와 신라 땅에 있던 계림도독부가 백제의 부흥운동을 막은 상황이 되었다. 당나라는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웅진도독부의 도독으로 세운다(664년).
- 신라의 계림도독부의 도독은 김춘추의 아들 문무왕
- 백제의 웅진도독부의 도독은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
문무왕과 부여융의 사이가 안좋은 것을 감지한 당나라의 장군 소정방(592~667)은 충남 공주의 취리산l에 신라의 문무왕과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부른다. 그곳에서 백마의 목을 자르고 그 피를 나눠 마시게 하면서 결속을 다지게 한다(취리산 회맹, 665). 이때까지도 신라는 정신차리지 못하고 고구려를 멸망시키려는 의지로 당나라에 납작 엎드린다.
고구려가 망한 후에 당나라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한다(668). 그리고 안동도호부가 계림도독부와 웅진도독부를 관장하게 하면서, 한반도 전체를 직접 통치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 이때부터 신라는 당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고구려의 부흥운동은 고연무 장군(오골성, 안시성)과 황해도 재령 지방의 검모잠(?~670)이 주도하였다. 검모잠은 안승을 왕으로 추대하였다(?~683).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가 보장왕의 딸과 결혼했는데, 연정토의 아들이 바로 안승이다. 그런데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면서 고구려의 부흥운동은 사실상 좌절되고 만다.
안승은 고구려 유민을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금마저(익산)에서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신라가 안승을 지원하였고, 안승은 보덕국(674)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예전에 연개소문이 도교를 장려하면서 고구려의 승려들 중에 혜관, 도현은 일본으로 건너갔고, 보덕이라는 스님은 백제로 내려갔다) 보덕국은 신라의 괴뢰정부 수준이었는데, 나중에 신라에 투항한다.
신라는 고구려 부흥운동 때부터 당나라를 몰아내려고 노력한다. 이런 과정에서 김유신은 사망하고(673), 신라는 여러번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676년에 매소성(오늘날의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당나라 이근행(?~682)이 이끄는 20만을 신라의 3만이 이기고 3만필을 노획하였고, 기벌포에서 승리하면서 당나라를 몰아낸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 당나라는 티벳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군대를 신라에서 뺄 수밖에 없었다).
후에 안동도호부도 평양에서 요동으로 옮겨가면서 대동강 이남을 신라가 차지하는 것을 어쩔수 없이 인정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원래 김춘추와 당태종이 동맹을 맺으면서 약속한 것인데, 당나라가 모른척 하고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고 했다가 쫓겨나면서 선심쓰듯이 인정한 것이다.
삼국시대와 삼국통일이라는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과연 신라의 통일을 진정한 통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오늘날로 따지면 중국과 손을 잡고 북한을 나눠 가지면서 평양 이남을 우리 땅으로 하고 나머지를 중국이 가지라고 한다면, 그게 통일인가? 백제가 멸망당하고, 고구려가 멸망당하고, 신라가 백제를 병합한 사건이 소위 삼국통일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고구려가 망하면서 협소한 한반도사관에 갇혀버리게 된다.
단재 신채호는 ‘김춘추와 김유신이 외세를 끌어들인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설령 그들이 고구려의 영토를 되찾고 중국까지 쳐들어가서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죄는 용서할 수 없을진대 작금의 학자들이 그들을 통일의 영웅으로 칭송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하였다.
심지어 중국의 왕조 역사에서도 통일을 했다손 치더라도 나라 이름 앞에 통일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통일 같지도 않은 통일을 사용해서 ‘통일신라’라고 쓰는 것은 코메디 아닌가? 신라의 통일은 민족적 일체감 형성에도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200년 후에 견훤의 후백제와 궁예의 후고구려가 등장하면서 후삼국으로 쉽게 분열되지 않았는가?
발해가 우리 역사라고 인식한 유득공(1748~1807) 『발해고』에서 남북국시대로 불렀다. 만약 통일신라라고 계속 주장하고 싶으면 발해를 우리 역사로 인정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영상 & 유투브] > [황현필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1] 신돈은 비난 받아야만 하는가? (0) | 2021.07.12 |
---|---|
유투버 황현필 선생의 [삼국통일] 총정리 (0) | 2021.07.10 |
[삼국통일13] 가장 가슴 아픈 멸망 (0) | 2021.07.10 |
[삼국통일12] 열국시대가 맞다(Feat. 백제부흥운동) (0) | 2021.07.10 |
[삼국통일11] 당태종vs연개소문,의자왕vs김춘추 (Feat 백제 멸망) (0) | 2021.07.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