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13] 가장 가슴 아픈 멸망
고구려 멸망(668)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실감과 애통함을 준다. 발해가 있지만 상징적으로 만주 지역을 상실했다는 마음이 크다.
645년 : 고당전쟁
648년 : 나당동맹
649년 : 당태종 사망
연개소문의 사망시점은 언제인가?
삼국사기와 중국의 기록은 666년으로 되어있고, 단재 신채호 선생은 657년 이전이라고 주장한다. 666년에 죽었다면 백제가 멸망하는 순간에 아무 것도 못한 무능한 지도자라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채호 선생이 낙양에서 연남생의 묘석을 발견한다. 거기에는 연남생이 막리지가 된 해를 657년으로 기록해 놓고 있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의 아들인 연남생과 연남건, 연남산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666년에 막리지인 연남생이 국내성을 시찰하고 있었고, 연남건과 연남산은 평양성에 있었다. 이때 귀족들이 연남생과 연남건, 연남산 사이를 이간질시켰다. 그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몰라서 평양의 동생들을 감시하기 위해 연남생이 보낸 사람이 발각되면서 연남건과 연남산이 분노하게 된다.
이때 보장왕이 연남건을 지지하면서 그를 막리지로 임명하면서 분열하게 된다. 연남생과 연남건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연남건이 연남생의 아들을 죽이게 된다. 약간 세력이 밀린 연남생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성을 가지고 당나라에 투항하게 된다. 연남생은 이후 고구려에 대한 정보를 당나라에게 건네주었고, 이후 당나라가 쉽게 고구려를 침략해서 평양성까지 진력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때 조카들의 싸움을 본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는 자신이 지키던 성 15개를 가지고 신라에 투항했다.
결국 당나라 50만과 신라 20만이 평양성을 에워쌌다. 한달 정도 버텨냈지만 예전에 고수전쟁이나 고당전쟁과는 달리 군량미 조달이 용이했던 당나라 부대는 여유있게 공격하였고, 오히려 평양성에서 군량미가 바닥이 나게 되었다. 결국 연남산과 보장왕이 먼저 항복하였고, 연남건은 끝까지 저항하다가 끝내 자결을 시도했고,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당나라 군대에게 잡히고 만다.
결론적으로 연남생의 당나라 투항이 고구려 멸망의 직격탄이 되어버린 것이다. 연남생의 행동은 조선 후기 이완용 이상의 역적질을 한 것이다.
이로써 700년간 만주를 지배하고 호령했던 고구려가 망하게 되었는데, 고구려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이후에 만주에서 활동한 국가들은 저마다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자처하였다.
당나라는 노골적으로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백제 지역에 웅진도독부(660)를 설치하고, 신라 지역에 계림도독부(663)를 설치한 후에, 고구려 지역에는 안동도호부(668)를 설치하면서 직접 지배하려고 한다. 이러한 당나라의 야욕을 신라가 막아내면서 당나라를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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