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 기독교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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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니코스 카잔차키스,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 기독교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by [수호천사] 2023.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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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라는 소설은 기독교 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예수는 사랑을 전했지만 그 결과 생긴 것은 교회였다. 물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역사에 존재가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2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과연 교회는 그러한 교회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을까?

중세 시대를 거쳐오면서 교회는 그야말로 세속의 권력에 탐닉해 타락하고 그 빛을 잃어버렸다. 초대 교회 신앙의 순수성을 되찾기 위해 시작된 종교개혁으로 개신교(프로테스탄트)가 생겼지만, 오늘날 개신교 역시 세속에 물들어버린 가톨릭 교회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문제다.

종교의 이름으로 살인과 전쟁이 그치지 않았고,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교회는 때론 불의와 타협하고 때론 불의에 앞장서온 기억도 있다. 자신의 욕망을 한껏 부풀리면서 그것이 마치 신의 계획이고 은총이고 섭리라고 자신을 합리화시키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죄의식을 완화시켜주는 마약과도 같은 존재로 추락해 버렸고, 교회와 성직자들은 그러한 예수를 판매하는 장삿군이 되어버렸다.

소설 속에서 자신이 맡은 교구의 평화로움과 질서가 방해받지 않아야 하기에, 사랑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마놀리우스를 교회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성직자의 모습은 2천년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고 민중을 선동하는 유대 종교지도자의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다. 2천년 전의 그들 역시 자신들이 확고하다고 생각하는 종교적 체계에 예수 그리스도는 가시같은 존재였고, 기존 질서를 흔드는 불순분자였다. 예수를 통해서 로마 제국이 자신들에 대한 관대한 입장을 철회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예수 한 사람이 희생당함으로 유대교와 자신들의 민족이 평화를 얻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를 통해서 2천년전의 십자가 사건이 부활 이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사건은 믿지 않는 이교도들에 의해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기독교인으로서는 접하기 거북한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이지만, 기독교는 다시 한번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교회는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를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나아가서 사랑을 외치는 오늘날의 예수를 위험한 존재라고 억압하고 십자가에 못박고 있지는 않은지...

문득 마르크스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역사상 그리스도인은 오직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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