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수립7] 해방 당일 그놈 목소리(Feat.여운형, 히로히토, 맥아더)
여운형에 대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여운형이 사회주의자라는 이유 때문에 중고등학교에서 그다지 자세하게 가르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실제로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하에서는 여운형에 대한 수능 출제까지 제한했다고 한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가 만들어지기 전에 1918년에 신한청년단이 만들어진다. 신한청년단은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보내서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였는데, 이 신한청년단의 대표가 여운형이라는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여운형은 조선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기에 일본 왜왕과 독대했던 인물이다. 일본 왜왕에게 식민통치에 대한 부당함을 당당하에 이야기한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의 패망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을 때, 조선총독부는 한반도에 있는 일본인(60~70만)의 안전을 우려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동안 일제에 어느정도 협력하던 송진우와 김성수에게 일본인의 안전을 부탁한다. 그런데 송진우와 김성수는 그것을 거절하였고, 결국 총독부 정무총감(넘버2)은 여운형을 찾아간다.
여운형은 1944년에 조선건국동맹이라는 단체를 안재홍과 손잡고 만들고 있었는데, 엔도에게 ‘나는 지금까지 일본의 식민통치가 싫었지 일본인을 미워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하며 다섯가지 사항을 제시하였다.
1. 여운형의 조선총독부 행정권 인수 5조건
1. 전 조선의 정치범ㆍ경제범을 즉시 석방할 것
2. 집단 생활지인 경성의 식량을 8, 9, 10월 3개월분을 확보할 것
3. 치안 유지와 건설 사업에 아무 구속과 간섭을 말 것
4. 조선에 추진되는 학생의 훈련과 청년의 조직에 간섭하지 말 것
5. 전 조선에 있는 각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우리 건설 사업에 협력시키며 아무런 괴로움을 주지 말 것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왜왕 히로히토가 라디오를 통해서 항복을 선언하였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전쟁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지 항복이라고 생각될만한 부분은 없다. 아마도 당시 연합국에는 무조건 항복의 의사를 밝혔지만 자신의 나라 백성들에게는 쪽팔려서 항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당시 조선인들도 일본의 신민으로 분류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방송을 들은 조선인들은 실제로 해방이 되었는지 의문을 가졌고, 8월 16일이 돼서야 비로소 해방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2. 왜왕(히로히토)의 항복 선언문 : 대동아전쟁종결의 조서
짐은 깊이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에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코자 여기 충량(忠良)한 그대 신민에게 고하노라.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 영, 중, 소, 4국에 대하여 그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케 하였다. 대저 제국 신민의 강녕(康寧)을 도모하고 만방 공영의 낙을 같이함은 황조왕종(皇祖皇宗)으로부터 내려온 황실 규범으로서 짐이 받들어 수행해온 바이다. 전에 미, 영 양국에 선전포고한 까닭도 또한 실로 제국의 자존과 동아(東亞)의 안정을 열망함이지 타국의 주권을 배제하고 영토를 탐하는 것은 짐의 뜻이 아니었다. 그런데 교전에 이미 4년이 지나고, 짐의 육, 해 장병의 용전(勇戰), 짐의 수많은 각료, 신하의 노력, 짐의 1억 백성이 봉공(奉公)에 모두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세는 호전되지 않고, 세계의 대세가 또한 우리에게 불리하도다. 그뿐만 아니라 적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끊임없이 무고한 백성을 살상하여 참담한 피해는 참으로 측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더 교전을 계속함은 끝내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연하여 인류의 문명까지도 파괴하게 된다. 이러한데 짐은 무엇으로 하여금 억만의 백성을 보호하고 황조황종(皇祖皇宗)의 신령에 사죄할 것인가. 이것이 짐이 제국 정부로 하여금 공동선언에 응하게 한 까닭이니라. 짐은 제국과 함께 끝까지 동아(東亞)의 해방에 협력한 모든 맹방(盟邦)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 신민으로서 전진(戰陣)에서 죽고 직장에서 순직하고 비명(非命)에 죽은 자, 및 그 유족을 생각하면 오장이 찢어지는 듯하다. 또 전상을 입고 재난으로 화를 입어, 가업을 잃어버린 자의 후생에 이르러서는 짐이 깊이 마음 아픈 바이다. 생각해보면, 금후 제국이 받을 고난은 물론 심상치 않다. 너희 신민(臣民)의 마음속은 짐이 잘 알고 있도다. 그러함에도 짐은 시운(時運)을 향하는 대로, 견디기 힘든 것을 견디고, 참기 힘든 것을 참으며, 더욱 만세(萬世)를 위해서 태평(太平)을 열어가고자 희망한다.
짐은 여기서 국체(國體)를 호지(護持)하면서 충량(忠良)한 그대 신민(臣民)의 진심 어린 마음을 믿고 의지하며 항상 그대들 신민과 함께 있다. 만약 감정에 격하여 함부로 사건을 일으키고 동포를 고통스럽게 하고, 서로 시국을 어지럽힘으로써 대도(大道)를 그르쳐서, 전 세계에서 신의를 잃게 하는 것은 짐이 가장 경계하는 바이다. 아무쪼록 거국일가(擧國一家) 하며 자손에 서로 전하여, 신국일본(神國日本)의 불멸을 믿고, 각자 책무가 중하고 갈 길이 먼 것을 생각하여, 총력을 장래를 위한 건설에 기울이고, 도의를 두텁게 하고 지조를 굳게 하며, 맹세코 국체의 정화(精華)를 발양(發揚)하고, 세계의 진운(進運)에 뒤지지 않도록 기해야 마땅하다. 그대들 신민은 짐의 뜻을 잘 받들라.
(일왕서명)
소화(昭和) 20년 8월 14일
항복문서 조인식에서 서명한 시게마쓰는 이전에 윤봉길의 폭탄에 의해 다리 하나가 날아간 상태였다. 이 시게마스의 딸이 롯데 그룹을 세운 신격호와 결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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