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심유경2 [임진왜란48] 정유재란-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재침략한 이유와 목적(사명당vs가토) [임진왜란48] 정유재란-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재침략한 이유와 목적(사명당vs가토) 제2차 진주성 전투 이후 4년간 조선, 명나라, 일본은 휴전기간이었다. 그런데 이 기간에 조선은 배제된 채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회담이 계속되었다. 명나라측에서는 심유경(1526~1597)이 나섰고, 일본측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1555~1600)가 회담에 응했다. 이때 심유경은 명나라 사신 2명과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때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7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7가지 요구사항] 명나라 황제의 공주를 일본 국왕의 후비로 삼는다 명나라와 일본간의 무역을 재개하여 관선과 상선을 왕래하도록 한다. (감합무역 :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이루어진 무역) 명나라와 일본 양국의 전권대신이 통교를 서약.. 2021. 4. 28. [임진왜란39] 한양 탈환, 쟤들 살려 보내야해?(feat.정걸의 용산 식량기지 박살과 고언백의 노원평 전투)│황현필 한국사 평양성을 빼앗기고 고니시 유키나가가 한양으로 후퇴하였고, 나머지 일본군도 한양으로 모여들어서 한양에는 5만이 넘는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더 이상 한양에 있을 수 없었다. 왜 그들은 한양을 포기하고 철수해야 했을까? 1. 군수 물자 및 보급품 부족 : 이미 이순신에 의해서 남해의 제해권이 장악되고 한양에 남아 있는 일본군은 군수품이나 보급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2. 일본군의 막대한 병력 손실 : 여러 크고 작은 전투를 치루면서 일본군은 22만에서 12만 명으로 줄어들었다(10만 명이 사망한 것이다). 3. 장기전에 지치고 병든 일본군 4. 명군의 참전 : 명나라 해안을 노략질하면서 경험한 무능한 명나라 군사들이 아니라 요동과 절강성의 정예부대를 경험한 후에 일본군은.. 2021. 4. 25. 이전 1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