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신미양요2 [근대8] 19세기 열악함, 그래서? (20분 순삭ver.) [근대8] 19세기 열악함, 그래서? (20분 순삭ver.) 병인박해(1866.1)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7) 병인양요(1866.9) 오페르트 도굴 미수 사건(1868) 양요(洋擾)라 함은 서양인의 소요라고 할 수 있다. 서양(洋), 소요(擾) 신미양요를 일으킨 미국은 1871년에 왜 쳐들어왔을까? 핑계는 1866년에 있었던 제너럴셔먼호 소각 사건이었다( 1866년 당시에 평양감사 박규수와 평양 관민들에 의해 제너럴셔먼호가 불태워졌다). 이 당시에 영국과 프랑스는 중국에서 여러 가지 이권을 빼먹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프랑스는 1866년에 병인양요를 일으키며 쳐들어왔지만 프랑스 입장에서는 인도차이나 반도에 집중하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을 처음으로 개항시킨 국가였다. 당시에 페리 제독(1794~18.. 2021. 6. 20. [근대6]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백두혈통? [근대6]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백두혈통? 대원군의 대외정책은 통상수교거부정책(쇄국정책)이었다. 이때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로 인해서 병인박해(1866.1)가 일어났고, 이 병인박해로 인해서 병인양요(1866.10)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 병인박해와 병인양요 사이에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7)이 있었다 셔먼 장군(1820~1891)은 미국의 남북전쟁 때 영웅이다. 이 셔먼 장군의 이름을 따서 만든 배가 제너럴셔먼호였는데 이 배는 미국의 상선이었다(미국인 3명, 영국인 2명, 중국인 16명, 말레이시아인 3명으로 구성됨). 제너럴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평양에 와서 조선과 통상을 요구하였다. 이때 평양 감사는 박규수(1807~1877)였는데, 대표적인 개화론자로 연암 박지원(1737~1805.. 2021. 6. 3. 이전 1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