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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물2

[병자호란12] 원균을 넘어서는 최악의 똥별들 [병자호란12] 원균을 넘어서는 최악의 똥별들 강화도의 북쪽 갑곶에는 충청도 수사 강진흥(?~1637)이 판옥선 7척을 거느리고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남쪽인 광성보에는 강화유수 장신(?~?)이라는 인물이 판옥선을 27척 거느리고 지키고 있었다. 강화도를 점령한 인물은 누르하치의 아들이자 홍타이지의 동생인 도르곤(1612~1650)이었다. 도르곤이 1만 6천의 병력으로 강화도를 공격하였다. 강진흥의 수군은 건너편 육지에서 쏘는 포(홍이포)에 의해 수세에 몰렸다. 그래도 강화해협을 건너려는 청나라 군대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이때 광성보를 지키는 장신이 도우러 올라갔어야 하지만 장신은 모른척 하였다. 장신의 부하 구원일(1592~1637)이 칼로 장신을 죽이려고까지 할 정도였다. 구원일.. 2021. 7. 4.
[임진왜란8] 탄금대 전투 - 신립은 대체 왜? 이와중에 혼자 살아남은 1인? (아~조령과 문경새재) │황현필 한국사 조선에 출정한 일본의 제1선발 고니시 유키나가는 부산에서 밀양을 거쳐 대구를 격파하고 상주로 진격하여 조령을 넘으려고 하고 있었다. 제2선발 가토 기요마사는 경주를 거쳐 죽령으로전진하고 있었으며, 제3선 발 구로다 나가마사(1568~1623)는 김해를 공격하면서 추풍령으로 넘어가려고 하였다. 당시 조선의 군역제도는 오랜 기간 평화의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었다. 15세기 조선의 국방력은 약하지 않았다. 세조가 만든 보법제는 3인 1조로 구성되었으며, 한 명이 정군으로 선정되면 나머지 두 명의 경비를 충당하는 체제였다. 조선이 기본적으로 양인개병제였으나 양반과 상인, 중인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병사로 차출되지 않았으며, 농민들만 병사로 차출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병농일치). 당시 군역 말.. 2021.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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