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한국통사] 일본이 조작한 한사군 평양설과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젊은 사학자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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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한국통사] 일본이 조작한 한사군 평양설과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젊은 사학자들 #2

by [수호천사] 2021.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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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한국통사] 식민사학 비판했다가 대한민국 검찰이 기소해서 1심 유죄 판결 이야기 일본이 조작한 한사군 평양설과 임나일본부설을 젊은 사학자들 추종 #2

 

 

2016년도에 이덕일 선생이 식민사학을 비판하다가 자랑스런(?) 대한민국 검찰이 그 식민사학 비판한다고 기소해서 재판받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긴 나중에 다시 말한다고 한다) 그때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니까, ‘이때다라고 완전히 죽이려고 여러 세력들이 달려 들었다고 한다. 그때 『역사비평』이라는 역사 잡지에서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이라는 주제로 두 번에 걸쳐서 대대적으로 연재를 했다.

 

『역사비평』은 근현대는 어떤지 몰라도 고대사 부분은 총독부의 학설을 그대로 따르는 ‘총독부 기관지’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조선총독부 역사관은 영원하다라는 것이다. 40대의 젊은 역사학자들이 등장했는데, 보수ㆍ진보 언론 할 것없이 대대적으로 이 젊은 학자들을 띄워준 것이다. (한국 사회에 놀라운 토왜 카르텔이 드러난 것이다) 조선일보는 감격에 겨워 이들을 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이라고 소개했다. (조선이 칭찬하고 강조하면 뭔가 친일파와 관련되는 느낌은 나만의 생각인가?) 이들은 총독부에서 만든 논리를 그대로 주장하고 있었는데,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고, 한사군은 북한에 있었으며, 임나는 가야다’라는 것이다.

 

 

북한이 요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름 정신승리를 하면서 항상 자신들이 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그 뿌리는 그들의 역사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 선생의 아들인 홍기문은 리두 학자이다. (국어학과 국사학, 지리학은 같이 가야 한다) 우리나라만 총독부가 칸막이를 쳐 가지고 다 따로따로 연구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학문이 통합되면 체제 문제로 가게 돼있다. 체제가 잘못되었다! 총독부 체제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가지 못하게 총독부는 학문을 쪼개놓았다. 그래서 고대사를 연구했으면 고대사만 해야 해!’ 이것이 통례화가 되어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홍기문이 1949년에 나온 력사제문제라는 학술지에 쓴 글을 보면 일제 식민사학의 구조는 1) 한사군 한반도설(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2) 임나일본부설(임나가 가야다)라는 주장이며, 백제가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주장이다. 이것에 대해서 북한의 역사학계는 1949년에 홍기문을 통해서 일본의 식민사관을 정확하게 정리하고, 비판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총독부 역사관을 젊은 사람들이 주창했을 때, 비판은커녕 대단한 학자가 나온 것처럼 띄워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한나라가 서기전 109년부터 1년 동안 전쟁을 해서 위만조선을 무너뜨리고 위만조선의 수도 자리에 낙랑군을 설치하고 나머지 삼군도 그 주변에 설치했다는 한사군의 위치가 어디에 있었느냐를 알려면, 일본의 교수나 한국의 교수가 주장한 것보다 한사군이 실제로 설치되었던 당시에 쓰여진 역사서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 당시 역사서들은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당시의 역사서들은 낙랑군이 ‘요동’에 있었다고 말한다. ‘한반도나 평양에 있었다’고 말하는 사료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남한의 강단 식민사학자들은 조선총독부에서 한사군이 평양에 있다고 했으니까 지금까지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한심하지 않은가? (최소한 사료를 찾아보려는 연구도 안하고 있다... 설마 한문을 모르는...???)

 

 

201765일 현충일을 앞두고 한국일보의 조태성이라는 기자가 소위 무서운 아이들과 대담한 기사가 실렸다.

 

  • 기자 :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에서 논란이 됐던 낙랑군 위치 문제는 어떻게 되나?
  • 안정준 :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는 건 우리뿐 아니라 제대로 된 학자는 모두 동의한다. 100년 전에 이미 논증이 다 끝났다.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 김재원 : 100년 전이라고 하니까 자꾸 친일사학 소리 듣는다. 하하
  • 기경량 : 그러면 200년전 조선 실학자들이 논증을 끝냈다 라고 하자

 

 

현충절을 앞두고 언론에서 총독부 역사관이 옳다! 이건 바뀔 가능성이 없다!’ 이런 걸 버젓이 보도하고 방송하고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무서운 아이들이나 무서운 아이들의 스승의 고민은 북한의 역사학은 뭐라고 말하고 있나?’이다. 무서운 아이들의 한 명인 안정준은 역사비평에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이라는 특집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일제시기에 발굴한 낙랑지역 고분에서는 70여기에 불과한 반면 해방 이후 북한에서 발굴한 낙랑고분의 수는 1990년대 중반까지무려 3,000여기에 달한다. 현재 우리가 아는 낙랑군 관련 유적의 대다수는 일제 시기가 아닌 해방 이후에 발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에 대한 근거로 북한의 리순진이라는 학자를 참고문헌으로 적어놓았다. 실제 리순진이라는 학자는 뭐라고 이야기 했는가를 살펴보자. 리순진은 『평양일대 낙랑무덤에 대한 연구』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해방 전에 일제 어용 사가들은 우리 민족사의 첫 머리인 단군조선의 력사를 말살하는 한편 평양 일대의 낙랑군 무덤을 한사군 낙랑군 시대의 유적으로 왜곡 날조하면서 그것을 기초 자료로 하여 한나라 낙랑군이 평양 일대에 있었다는 낙랑군재평양설을 조작해 냈다. 해방 후 우리 고고학자들이 발굴 정리한 낙랑 무덤 자료들은 그것이 한식, 곧 중국식 유적 유물이 아니라 고조선 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낙랑국의 유적과 유물이라는 것이 실증해 준다

 

남한의 강당 식민사학자들은 고조선 후예 국가들이 만든 유물을 ‘북한에서도 3,000기를 발굴한 결과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 라고 한다’ 라고 거짓말을 당당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거짓말이 통용되고 이렇게 거짓말 한 학자를 대단히 위대한 학자라도 나온 것처럼 언론에서 대서 특필하는 상황을 보면, 한국 사회에 친일 토왜 카르텔 구조가 얼마가 강고한 가를 깨닫게 된다.

 

중국의 사료들은 낙랑군을 지금의 하북성 노룡현(명, 청나라 때 영평부)으로 본다. “영평부 북쪽에 한나라 낙랑군 조선현이 있었다라고 중국 사료들은 말하고 있다.

 

 

요동의 개념에 대해서 나중에 시간 있으면 언급하겠지만, ‘중국 요녕성에 요하란 강이 흐르는데 요하를 중심으로 동쪽을 요동, 서쪽을 요서라고 보는 건오늘날의 개념이고, 고대 낙랑군이 설치됐을 당시 요동의 위치는 하북성(허베이성) 일대이다.

 

 

몇 번 양보해서 지금의 요동이라고 치더라도 낙랑군은 요동에 있다라고 하니까 평양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강단 사학자들은 낙랑군은 평양에 있다고 주장한다. 설사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중국(한나라)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이야긴데 그게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기를 쓰고 우리는 옛날에, 우리 북한은 중국 식민지였다라고 기를 쓰고 옹호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민족의 자부심도 없는... 머리 비고 가슴이 없는 역사학자들인가?)

 

중국 사료를 보면 전부 다 낙랑군이 요동에 있었다라고 나오고, 유적ㆍ유물도 평양 지역에서 나오는 유물들 중에서 일본이 조작한 것 외에는 위만조선과 낙랑군의 유물은 나오지 않는다.

 

일제가 조작했던 낙랑군 평양설, 한사군 한반도설... 이것을 가져다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그대로 악용하고 있다. (중국 : 땡큐 식민사학자들...) 이것을 가지고 시진핑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주장한 것이다. (식민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쓰레기 연구가 중국을 이롭게 하는 걸 알고나 있을까?).

 

 

시진핑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학자가 아니라 당사자의 일부인 남한 역사학자들이 애절하게 주장한다고 보고를 받으면 북한은 우리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문서로는 보지 못했지만, 중국을 답사할 때 많이 들었던 내용은, ‘북한이 급속도로 붕괴되면 중국이 북한을 차지하고 동북 4성 중의 하나로 만든다라는 이야기였다. 북한 지역이 과거에 중국의 식민지였다는 것이 사료상으로 하나도 없는데... 사료는 오히려 거꾸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남한 강단 사학자들이 해방 7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가는 노릇이다.

 

강연을 갈 때마다 자주 듣는 질문은 이것이다. “식민학자들은 왜 아직도 저런 주장을 하는 거예요?” 시청자들이 판단하라고 했는데... 1) 각이 없고, 2) 선생이 알려준 내용을 암기하는 데는 도가 텄지만, 3) 스스로 연구하고 찾아내는 실력은 1도 없고, 4) 민족의식은 개나 줘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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