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한국통사] 다시 찾는 7천년 우리역사 이야기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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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한국통사] 다시 찾는 7천년 우리역사 이야기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

by [수호천사] 2021.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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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선생은 자신이 왜 역사학을 하게 되었나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함석헌 선생의 자서전인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을 보았다. 당시에는 유신체제로 고등학교에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소풍을 가도 교련복을 입고 4열 종대로 행진하면서 소풍지까지 가는 군국주의가 아주 기승을 부리던 시대였다. (그때부터 이덕일 선생은 체제내 제도권 교육하고는 별로 맞지 않았었다고 한다)

 

 

함석헌 선생은 평안북도 출신으로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셨다. 이 분은 박정희 정권에 상당히 대립하는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사상적으로 대립하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분이 결국은 역사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역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는 책을 구해서 보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 교과서와는 너무나 다른 책이었다. 이 책은 원래 제목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라는 책이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 무교회주의를 표방하던 함석헌 선생은 오류동에 있는 한 무교회주의자 집에서 연말연시에 아주 작은 수의 동지들을 놓고 한국 역사를 강연했던 내용이었다. ‘성서적 입장에서 우리의 역사를 보면 수난의 역사라는 이야기이며, 그 수난 속에 우리 민족의 뜻이 있고 길이 있다라는 내용인데, 해방 이후에 이 책을 1950년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로 편찬하였다가 나중에 성서적 입장은 좁은 느낌이어서 조금 넓혀서 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는 책으로 제목을 바꿔서 출간하였다.

 

 

이덕일 선생은 이런 책들을 보면서 역사를 공부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남들보다 대학을 늦게 갔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서 경험한 사학과는 함석헌 선생의 책을 보고 생각하던 그런 사학과는 아니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몰랐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석연치가 않았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시스템이 석연치가 않았었는데, 학회에서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역사 공부하는 분을 만나게 되어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지금 사학과에서 가르치는 커리큘럼은 대부분 조선총독부에서 가르쳤던 것에서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로는 그 당시에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같이 역사학을 했는데 그런 독립운동가들의 역사학이 다 사장됐다. 다 지금 없어졌다. 우리는 이 부분을 좀 살려야 되지 않겠느냐’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구조가 이해가 간 것이다.

 

대학원 다닐 때가 1990년대 중후반이었는데, 그때까지도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역사관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분 말이 무조건 맞다고 볼 수 없으니까 나름대로 조사를 해 보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그때까지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역사학 체계가 바로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알아보니까 이러한 구조가 너무 강고한 것을 발견했다.

 

사실 독립운동가들의 대다수는 역사학자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셨던 박은식 선생한국독립운동지혈사라든지 한국통사같은 책을 쓰셨던 역사학자셨다. 임시정부가 대통령제를 선택하다 보니까 특히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이 여러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그래서 박은식 선생이 대통령제는 대통령 한 명 잘못 뽑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독립운동계가 많이 침체돼기 때문에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국무령제를 선택하게 된다. (요즘으로 말하면 의원내각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 만주무장투쟁파의 대부였던 석주 이상룡 선생을 초대 국무령으로 모신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안동 출신으로 고성이씨인데, 고성이씨는 대대로 고려 때에 행촌 위암 선생부터 시작되는 대대로 역사학자 집안이었다. 신흥무관학교에서 아주 중시한 게 있는데 아리랑이라는 책(김산이라는 독립운동가가 구술한 것을 책으로 만든 아주 유명한 책)에서 김산의 말을 들어보면 신흥무관학교에서 아주 중시했던 것이 군사교육역사교육이었다고 한다. 이 신흥무관학교에서 가르치던 역사 교재를 저술하신 분이 국무령이셨던 석주 이상룡 선생이셨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임시정부의 중심축 중의 한 분이셨던 성재 이시영 선생은 광복 후에 돌아와서 초대 부통령을 하신 분인데, 망명지에서 감시만어라는 책을 쓰셨는데 역사에 대단히 해박한 지식이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역사학자이셨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일제 일제 침략에서 벗어나 광복됐을 때, 해방 이후에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길을 걸었다면 당연히 독립운동가들이 만든 역사학이 우리나라에 학생들이 배우게 되었을 것이고, 일반 국민들 대다수가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역사학을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해방 이후에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역사관의 틀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겁이다.

 

대학원 때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사학계가 너무나 강고하기 때문에 살짝 고민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공부하다가 얻은 진실을 이야기하자는 생각을 하였다. 조선조 학자들 중에서 성호 이익 선생을 존경하는데, 그분은 평생 벼슬하지 않고 평생 재야에서 혼자 글을 쓰셔서 성호사설이라는 방대한 백과사전을 쓰신 분이다. 그런 분처럼 우리 시대에도 식민사관이 아닌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을 계승하는 계승했다라고 이야기되는 학자가 한 두 사람쯤 있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이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 역사관이 조금 알려지면서 많은 수난과 비난과 공격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고 한다. 이 자체로 우리나라는 몸은 1945년 8월 15일부터 해방됐는지 몰라도 아직도 우리 사회의 정신 세계는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역사관에 있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겠다.

 

최근에 『이덕일의 한국통사』란 책을 써낸 이유는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이신 이종찬 원장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어디 가서 식민사관을 비판하면, ‘무슨 책을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권에 정리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해방 이후의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으로 고대부터 대한제국의 멸망까지 정리’해서 세상에 내놓은 책이 이덕일의 한국통사이다. 앞으로 부족한 점이 생기면 보완할 생각이고 이덕일의 역사TV’에서는 한국통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되 그 외에 무궁무진한 우리 역사의 이야기를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앞으로의 길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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