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활란 성상납 논란'에 직접 나선 도올 김용옥의 누나, 김숙희 전교육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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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김활란 성상납 논란'에 직접 나선 도올 김용옥의 누나, 김숙희 전교육부장관

by [수호천사] 2024.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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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희 전교육부장관이 최근 김활란과 관련된 논란에 직접 인터뷰를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참고로 김숙희 전교육부장관은 1937년생으로 도올 김용옥의 누나로 알려져 있다. (누나와 동생이 너무나 다른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이낙연 전국무총리의 배우자도 동일한 이름이라서 순간 헷갈렸다... -_-;;;

 

2013년 천안국제웰빙식품엑스포조직위원장 때의 사진임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바로가기]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한신대 교수로 역사학자인 김준혁 후보는 김활란 총장이 종군위안부를 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김활란 박사가 이화전문학교 교장이었다. 일본 놈들이 이화생들도 전쟁에 동원되도록 연설을 하라고 그분을 옛날 체육관 있던 건물의 큰 나무 아래로 강제로 끌고 내려갔다. 그러나 일본 놈들이 떠나자마자 기숙사로 쫓아 올라가셔서는 학생들에게 여기서 빨리 도망가라고, 고향 가서 결혼을 하든지 초등학교 교사라도 해서 강제 동원을 피하라고 하셨다.”

 

김숙희 전교육부장관은 1937년생으로 알려져 있다. 최대한 늦춰서 김활란이 위안부 독려를 1943년 정도에 했다고 해도 당시에 7살이었던 김숙희 전교육부장관이 김활란의 연설의 비하인드를 직접 목격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한 사항이다. 이것도 어쩌면 이후 이러이러하더라라는 2차 자료를 통해서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것을 마치 당시에 직접 목격했던 것처럼 인터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참고로 나무위키에는 1942년에 징병제에 대해 김활란이 주장했다고 언급한다.

 

“동아 10억의 민족을 해방하고 광명으로 인도하려는 도의의 전쟁이다. 우리 총후의 반도 여성은 지금 이 도의 전쟁에 한 사람의 투사로서 가담하고 있다는 광영(光榮)을 가졌다.”
194212- 징병제와 반도 여성의 각오

 

그리고 194312월 매일신보 기사에도 등장하고 있다.

 

[황국 여성으로서 사명을 완수]
아세아 10억 민중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결전이 바야흐로 최고조에 달한 이때 어찌 여성인들 잠자코 구경만 할 수가 있겠습니까....(중략)...싸움이란 반드시 제일선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학교가 앞으로 여자 특별 연성소 지도원 양성 기관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 동시에 생도들도 황국 여성으로서 다시없는 특전이라고 감격하고 있습니다.
김활란, 매일신보(1943.12.25.)

 

정확한 역사적 팩트가 아닌 자신의 심증을 마치 목격자처럼 언급하는 것은 학자적인 양심에 비추어 보았을 때,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보면 어떤 특정한 집단이나 단체가 특정한 사람에 의해서 조직되었다는 영웅주의적시각에서 이화여자대학교 자체가 김활란으로 치환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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