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 - 이성훈 역사소설(문성당)
오래된 독서 노트를 꺼내보았습니다. 1992년 3월 11일에 읽은 책으로 [광풍(狂風), 이성훈 역사소설, 문성당]에 대한 메모가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해당 도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절판된 책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해당 도서를 검색하다가 이런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1993년도 일붕문학상 시상식에는 음악공로상에는 「내고향 칠가산」등 가곡을 작곡한 음악가 이승학씨가 시부문은 「내고향 칠갑산」등 가곡을 작곡한 음악가 이승학씨가, 시부문은 「물오리고 싶어라」의 오승희 시인. 소설부분은 「광풍」의 작가 이성훈씨가 각각 수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청양신문]
같은 이름의 작가의 책 중에 [무인시대]라는 책도 발견했습니다. [광풍]과 같이 고려 무신정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광풍]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고려 중기는 역사적으로 발전의 가능성이 많았지만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지 못한 아쉬운 시기였습니다. 정중부의 무신의 난 이후 최충헌 일가가 집권하는 시기 동안 고려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무신정권의 시대는 그야말로 미친 바람(광풍)이 부는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는 '힘=권력'이 통하는 시대였습니다. 처음에 차별대우를 받는 무신들의 분노와 함께 시작된 무신정권은 그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구조를 개선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쟁취한 권력을 누리기에 급급했습니다.
역사의 광풍 속에서 강자로 등장한 자에게는 필연적으로 아부하는 자와 여자가 생기기 마련이며, 그를 넘어뜨리려는 적대적인 존재가 등장합니다. 강자는 자신의 위치를 사수하기 위하여 더욱 더 강한 힘을 유지해야 합니다. 더욱이 폭력을 통해서 얻은 권력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더 많은 폭력과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처받는 자들은 힘없고 약한 민중들입니다.
인간이 권력을 잡게 되면 초기의 순수했던 모습과 동기는 변질되어 버립니다. 물론 초기의 모습이 순수했다고 볼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자신만이 불합리한 사회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고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의문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민중이 힘을 얻어 궐기를 하고, 그러한 궐기가 성공해서 권력을 쟁취했을 때, 그들은 과연 민중으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하나의 권력 계급으로 등장할 것인가? 마르크스 레인의 이론을 바탕으로 출발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고려 시대 중기에 불어닥친 역사의 광풍은 한 순간도 그친 적이 없습니다. 단지 강도의 차이가 달랐을 뿐입니다. 지금도 역사의 광풍은 우리에게 계속 불어닥치고 있습니다. 단지 과거와의 차이점은 (아니, 아마 과거에도 그랬을지 모르지만) 광풍의 모습이 부드러운 친구의 모습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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