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투브에서 자주보는 한국사에 대한 강의 영상 중에 ‘임진왜란’에 대해서 황현필이라는 강사가 강의한 영상이 있다. 이 영상은 한 번 보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라 이곳에 정리를 해 두려고 한다.
갑옷은 일본이 조금 유리했다. 조선의 옷 소매는 답이 없었다. 명나라 장수가 ‘저런 옷소매로 어떻게 칼을 휘두르며 활을 쏜단 말인가?’라고 말했을 정도로 거추장스러웠다.
일본도는 조선의 칼(환도)에 비해서 상당히 날카로왔다. 그런데 조선의 칼(환도)가 튼튼했기 때문에 만약 칼과 칼이 맞부딛치게 되면 일본도가 깨지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칼을 여러 개 꽂고 다니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일본도가 자주 깨지는 것 때문이다. 그래도 전쟁의 활용도에서는 일본도가 유리했다고 할 수 있다.
창은 일본의 무기가 압도적이다. 조선의 창은 삼지창이어서 찌르기만 가능하지만 일본의 창은 베기도 가능했다. 오죽하면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조선의 병사 다섯 명이 일본의 소년병사 한명을 당해내지 못했다는 기록이 등장할 정도였다. 따라서 백병전은 가급적 피하려고 했다.
조총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상징적인 무기였다. 조준해서 쏘기는 조선의 승자총통의 사정거리가 700미터로 조총의 400미터를 압도한다(조총의 탄환이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히려면 50미터 안에서 쏘아야 한다). 그런데 조선에는 승자총통을 들고 있는 병력이 거의 없었다. 일본군은 20만 중에서 조총부대만 2만명이었다고 한다. 조총이 한 발 쏘는 시간이 1분 정도 걸렸기 때문에 조총부대는 보통 3열로 전투에 임했다. 그렇다면 20초에 여러 명이 한발씩 쏘게 되는 것이고 상대인 조선군은 20초 마다 여러발의 탄환이 날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공포감이 컸을 것이다. 따라서 조총부대는 일본이 압도적 우세를 가져오는 무기였다.
양국의 활은 조선의 활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조선의 각궁은 사정거리가 350미터인데 반해서 일본의 반궁은 60미터에 불과했다. 조선군은 편전이라는 애기살을 통아에 넣고 쏠 수 있었는데, 상당한 속도로 날아갔다. 전투중에 일본이 쏜 화살은 우리가 재활용할 수 있었던 반면, 일본은 통아가 없기 때문에 편전을 쏠 방법이 없었다. 해전에서 편전은 어마어마한 효과를 내었다.
화포는 조선이 압도적이었다. 해전의 경우, 조선의 판옥선은 화포를 올려놓고 안정적으로 쏠 수 있었다. 반면 일본의 안택선은 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화포의 진동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은 화포를 돛에 매달아서 쏘아야 했다. 따라서 사정거리와 정확도가 떨어졌다.
비격진천뢰는 시한폭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상대방의 배를 뚫고 들어간 비격진천뢰가 터지면서 그 파편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세종이 만든 신기전은 한 번에 여러 개의 화살을 쏘는 게 가능하였다. 그리고 거북선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무기다. 이러한 무기는 일본에 비해서 전혀 뒤지지 않았다.
판옥선(조선)과 안택선(일본)의 차이... 조선의 서해와 남해는 리아스식 해안, 조석간만의 차가 크다. 따라서 조선의 바다에서는 무겁고 튼튼한 배가 필요했고, 참나무와 소나무로 만들었으며 물살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잘 떠 있는 ‘평저선’이었다. 반면 일본의 배는 가볍기 때문에 빠르다. 배를 가볍기 위해서 삼나무로 만들었다. 일본군은 배끼리 부딪친 다음(충파) 상대 배에 올라가서 백병전을 치른다. 판옥선과 부딪치면 안택선이 깨진다. 자기 배가 깨지더라도 상대편 배를 빼앗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순신은 일본군이 배에 오르지 못하게 거북선에 뚜껑을 씌웠다. 조선의 판옥선은 튼튼하니까 갑판 위에 포를 올려놓고 안정적으로 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판옥선을 만드는 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당시 조선에서 수군이 된다는 것은 칠반천역(조선에서 천대받는 직업)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전쟁 초기에 원균이 수십척의 판옥선을 그냥 바다에 수장시키고 도망치면서 일본과 조선의 해군력을 비슷하게 만드는 활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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