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63] 이순신 전사하였나? 스스로 죽었나? 숨어 살았나? 결론 내려드림.
노량해전에서 조명연합군의 수군이 시마즈의 연합 함대에게 큰 승리를 거두었다. 어찌보면 한산도와 명량보다 큰 규모의 해전이었다. 대첩이지만 대첩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총사령관 이순신의 전사 때문이 아닐까?
노량해전이 끝나고 고금도로 모여든 조명연합군은 조선 수군과 명나라 수군 모두가 이순신의 죽음에 대해 통곡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덕형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이순신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우는 것을 보고 ‘저게 어찌 그냥 얻어진 민심이란 말이냐!’라는 장계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과연 노량에서 전사하셨는가? 이순신에 대해서는 ‘자살설’, ‘은둔설’, ‘전사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순신의 자살설’은 조선 숙종 때부터 여러 지식인들 사이에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스스로 갑옷을 벗고 일본군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갔다고 그리고 있있다. 이순신의 은둔설은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이순신이 전장을 빠져나와 섬에서 은둔하면서 여생을 보냈다는 주장이다.
1. 이순신 자살설
진린 『제이통제문』
“평시에 사람을 대하면 ‘나라를 욕되게 한 사람이라, 오직 한번 죽는 것만 남았노라’ 하시더니 이제 와선 강토를 이미 찾았고 큰 원수마저 갚았거늘 무엇 때문에 오히려 평소의 맹세를 실천해야 하시던고. 어허 통제여!”
진린과 이순신의 대화
“내가 밤에 천문을 보니 동방의 장수별이 희미해 가오. 옛날에도 기도한 사람(제갈공명)이 있었으니 당신도 부디 해보시오.” 하였더니, 이순신은 “정성과 재간이 모두 옛사람만 못하거늘 기도하는 것이나 본뜬다 하여 무엇 하겠소.”
이순신의 부하로 후에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유형(1566~1615)
“자고로 대장이 자기의 공로를 인정받으려 한다면 생명을 보전하기 어렵다. 따라서 나는 적이 퇴각하는 날에 죽어 유감될 일을 없애겠다.”
숙종 때 이민서(1633~1688)
“의병장 김덕령이 옥사하자 제장과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보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곽재우는 드디어 군직을 떠나 생식을 하며 당화를 피했고, 순신은 싸움이 한창일 때 스스로 갑옷과 투구를 벗고 적탄에 맞아 죽었다.”
숙종 때 이여(1645~1718)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순신은 얼마든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으나 스스로 큰 공이 용납되기 어려움을 알고 드디어 싸움터에 이르러서 그 몸을 죽였다고 했다. 장군의 죽음은 미리 결정된 것이다. 오호, 슬프도다.”
‘자살설’에 따르면, 시기와 질투심의 끝판왕 선조가 이순신을 곱게 보지 않았고, 이순신을 변호해주던 유성룡도 파직당한 상황이고, 잘못하면 역모죄로 가문이 몰살당하고 동료와 부하들도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순신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일 수도 있다.
2. 이순신의 은둔설
『이충무공전서』 이분 행록
“이순신이 탄환에 맞았다. 이순신의 맏아들 회(1567~1625)와 조카 완(1579~1627)이 시체를 안고 방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이순신을 모시던 종 김이까지 세 사람만이 알았을 뿐 부하 송희립(1553~1623) 등도 알지 못했다. 그대로 기를 휘두르면서 독전하기를 계속하였다.”
- 사망일 1598년 11월 19일 고금도 월송대에 묻힘
- 12월 10일 아산으로 이동
- 다음해 1955년 2월 11일 장례
- 15년 후 1614년 이장
3. 이순신 전사설
『선조실록』
이순신의 적의 탄환에 가슴을 맞고 배위에 쓰러졌다. 손문욱이 아들 이회가 울울지 못하게 하고 옷으로 시체를 가린 뒤 북을 울리면서 나가 싸웠다.
(손문욱이라는 사람은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나중에 풀려나온 인물이라 이순신을 암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받는다)
『선조수정실록』
순신이 적의 탄환에 가슴을 맞았다. 순신의 조카 완이 싸움을 재촉하니 군중에서는 순신의 죽음을 알지 못하였다.
『징비록』
날아오던 총알이 그의 가슴에 맞아 등 뒤로 빠져 나갔다
이순신의 형의 아들 이완이 독려하였다.
의병장 안방준의 『은봉야사별록』
총알이 희립의 갑옷과 투구에 맞았다. 이순신이 크게 놀라 일어서는 찬라 겨드랑이 밑에 총알을 맞았다. 아들 회가 통곡하려 함으로 희립이 회의 입을 막고 곡을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공의 갑옷과 투구를 벗기고 대신 기와 북을 잡고 독전하여 적을 몰아내었다.
4. 반박
- 자살설 반박 - 갑옷을 벗고 적의 총탄을 맞는다? 죽고 싶다고 쉽게 죽지는 않는다. 자기 대신에 주변에 있던 아들이나 조카가 죽을지도 모른다. 이순신이라면 자기가 죽기 위해서 판옥선 기함의 부하들까지 위기 상황에 노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은둔설 반박 - 장례가 늦어진 이유
- 선조가 명나라 부총관 등자룡의 장례를 먼저 치루려고 해서 장례가 늦어짐. 진린이 이순신의 시신을 안봤을 리가 없고, 꼼꼼한 선조가 이순신의 죽음을 확인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 은둔설 반박 - 실록이나 다른 기록 어디에서 이순신 은둔설이나 목격담 없다(원균과 비교됨)
- 자살설, 은둔설 반박 - 노량해전. 마지막 전투였기에 자살했거나 은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마즈의 함대를 궤멸시키면서 이순신은 원래의 목표인 고니시를 잊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은둔설은 더욱 희박하다)
- 자살하거나 은둔할 이유가 없다 : 이순신은 명나라 황제 만력제로부터 ‘면사첩’(免死帖)을 받았다. 선조가 대놓고 이순신을 죽일 수는 없었다. (암살을 시도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손문욱이 이순신을 암살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어찌보면 자살설과 은둔설은 오히려 이순신의 삶과 죽음을 폄하하는 것이다. 자기 혼자 영웅으로 남기위해서 부하들까지 위기 상황에 몰고갈 이순신이 아니며, 전투가 한창일 때 전장을 빠져나가서 은둔할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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