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청일전쟁4 [근대23] 일본은 왜 조선의 왕비를 시해했을까? [근대23] 일본은 왜 조선의 왕비를 시해했을까?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갑오농민전쟁)이 전개되었고, 동학군을 진압할 수 없었던 조선 정부가 청나라를 끌어들였고 텐진조약(1885)에 입각해서 일본군도 조선에 들어오게 된다. 일본이 6월에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7월에 일본이 조선의 내정개혁에 착수하라고 하면서 강제로 개혁을 실시한다(갑오개혁, 1894). 당시에 일본은 갑오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 ‘군국기무처’를 만든다(타율적 개혁기구). 출발은 타율적이지만 나름 조선의 관료들이 군국기무처에서 어마어마한 개혁을 실시한다. 정치적인 면에서 일본의 입김이 작용해서 궁내부를 설치해서 민비의 정치참여를 견제하였다. ‘개국’(開國)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고려 광종 때 ‘광덕, 준풍’이라는 .. 2021. 7. 2. [근대22]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진짜 이유 [근대22]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진짜 이유 청일전쟁 이전에 일본은 오키나와 점령(1872)하고 대만을 침략(1874)했었다. 그런데 이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했을 때 청나라는 일본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청나라의 입장에서는 오키나와와 대만은 포기할 수 있었지만, 조선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한 이후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청나라가 추가로 병력을 서해로 보내고 있었는데, 지금의 안산 단원구 풍도동 앞에 있는 바다에서 일본 해군이 청나라 해군을 박살내 버렸다. 청일전쟁의 가장 큰 전투는 평양 전투였는데(1894.9.15~17) 여기에서 일본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당시 청나라 군사 2천명이 죽고 4천명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한다. 일.. 2021. 7. 2. [근대21] 일본의 국가정신 사무라이? 닌자? [근대21] 일본의 국가정신 사무라이? 닌자?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다. 1894년 1월 고부민란에서 12월 전봉준의 체포까지... 당시의 역사는 양력이 아니라 음력으로 기술하였다. 음력이 양력으로 바뀌게 된 때는 을미개혁(1895)이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는 음력으로 서술되는 것이 원칙이다. 동학군이 전주성을 점령(1894.4.27)한 후에, 멍청한 고종과 민비가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이는데, 갑신정변 이후 청과 일본에 체결한 텐진조약(1885)에 의해서 일본의 군대도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다. 청나라가 1894년 5월 5일에 아산만으로 상륙하였고, 일본군은 1894년 5월 6일에 인천으로 상륙한다. 두 나라가 전쟁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서 동학군은 전주화약(1894.5.8)을 체결하고 해산한다... 2021. 7. 2. [근대19] 동학2 - 백성 잡자고 외국 군대 끌어들이는 왕과 왕비 [근대19] 동학2 - 백성 잡자고 외국 군대 끌어들이는 왕과 왕비 동학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것은 동학농민운동이 조선역사상 가장 큰 민란이라는 것이고, 조선왕조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뿌리(전주 이씨)가 있는 곳을 점령당한 것을 의미하였다. 이때 고종이 먼저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이자는 제안을 하였고, 당시 관료들이 반대를 하였다. (민씨척족정권의 관료들조차 반대하였다고 한다). 만약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인다면 텐진조약(1885)에 입각해서 일본 군대도 조선땅에 들어오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조선 땅이 양국의 전쟁터가 될 것이기에 반대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고종과 민비는 당연히 청나라가 이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0년 전과는 달리 국력이 성장한 일본은 청나라와 한판 뜨고 싶었지만 명분이 없었기 .. 2021. 6. 30. 이전 1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