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에 비젤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태인으로 그 악명 높은 독일 나치 정권하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 수용소에서 겪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책으로 써냈는데 그 중의 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수용소에서 많은 유태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을 교수형에 처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고 또 한 사람은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교수대의 밧줄이 내려와 목에 감기자 나이 많은 노인은 곧바로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린 소년은 쉽게 죽지 않고 밧줄에 목이 달린 채 20여분 이상 발버둥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참혹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수용소의 유태인들이 여기저기서 탄식하며, 안타까워하며 중얼거렸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가?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가? 하나님은 정녕 우리를 버리셨고 떠나셨단 말인가?’
그런데 바로 그때 엘리에 비젤의 마음속에 헤집고 들어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바로 지금 여기 있다. 나는 저 교수대에 매달린 저 소년과 함께 매달려 있고, 저 소년과 함께 아파하며 고통당하고 있다.”
비젤은 이때의 감동을 평생 가슴에 품고 고난의 터널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비참한 노예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의 삶의 모습은 처절하리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자부심도 잊은 지 오래되었고, ‘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는가 보다. 여호와는 우리를 잊으셨는가 보다.’라는 생각과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고난의 현장에 함께하셨습니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과 눈물과 아픔과 탄식을 보셨고, 들으셨고, 아셨습니다. 그리고 오셔서 건지셨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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