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40] 임난 최대전투의 시작(6천vs10만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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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 유투브]/[황현필 한국사]

[임진왜란40] 임난 최대전투의 시작(6천vs10만의 전설)

by [수호천사] 2021.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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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내려온 일본군에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린다.

 

진주성에서 당한 패전을 보복하기 위해 전병력을 동원해서 공략할 것.
진주목사의 목을 베어올 것.
그리고 진주성 내의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말살할 것.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할지라도
『토요토이 히데요시의 공격명령서』

 

 

1차 진주성 전투(김시민의 진주대첩, 1592.10)의 설욕을 하고 싶어하는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런 명령서를 다섯 번 보낸다. (아마도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김시민이 죽은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남쪽으로 후퇴해 있는 일본군 장수들도 무리라는 생각을 했지만 본국에 가족들이 인질로 있기 때문에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때 명나라 군대는 순천, 남원, 대구까지 내려와 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어쩔 수 없이 공격한다고 하면서 조선군이 진주성을 수비하지 않고 나가면 서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명나라가 진주성에서 발을 빼게 된다.

 

고니시 曰 : “관백이 지난번에 군사를 보내었다가 진주에서 좌절을 당하였으므로 여러 장수로 하여금 힘을 다하여 그 성을 쳐서 무찌르라고 하는데, 나는 중지시키고자 하나 기요마사가 듣지 않으니 일본군이 진주로 진입하면 성을 비우고 부딪치지 말아 사람들을 살리라고 하였다. 『난중잡록
고니시 曰 : “우리 일본군의 병마 30만이 진주에 왔다. 감히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선조실록』

 

선조는 명나라 눈치를 보고 있었고, 권율은 일본군의 30만이라는 소리를 듣고 진주성에 들어가지 않고 물러났다. 이때 이때 진주성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강화도에서 창의사로 있던 김천일(1537~1593)이 진주성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전라도의 의병장이지만 경상우도 병마사로 있던 최경회(1532~1593)도 진주성으로 향한다. 그리고 충청도 병마사로 승진해 있던 황진(1550~1593)도 진주성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1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과 함께 진주성을 지켰던 김성일은 제2차 진주성 전투가 발발하기 2달 전에 사망했고, 경상도 의병의 총사령관격이었던 의병장 김면은 3달전에 사망하였다. (김면의 병력이 곽재우에게 가게 되어 수백의 곽재우는 병력이 2천까지 올라갔다)

 

김성일을 대신해서 경상우도 관찰사였던 김륵(1540~1616)이 의령에서 작전회의를 하였는데, 김륵이 곽재우에게 진주성으로 들어가라고 했지만 곽재우는 진주성을 방어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면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실은 김륵 자신도 진주성에 들어가지 않는다.

 

황진은 전쟁 발발 당시에 현감(6)이었는데 6개월만에 도병마사(2)까지 승진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항진과 곽재우가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곽재우는 황진에게 진주성에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 훗날을 도모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황진은 김천일과 이미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기 위해 들어간다고 대답한다. 곽재우는 실리를 선택했지만, 황진은 명분을 선택한 것이다. 황진은 700명의 병사들과 함께 진주성으로 들어간다. [어쩌면 황진도 대단하지만 이러한 황진과 함께하기 위해 진주성에 들어간 무명의 병사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충청 병사(忠淸兵使)는 진주성 수비와 직접 관계가 없으니 밖에서 싸우는 것이 옳겠다.”
하니, 황진이 말하기를, “나는 이미 창의사(倡義使)와 더불어 공약(公約)을 하였으니 저버릴 수 없다하였다.
『선조수정실록 27권』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한 진주공성대 명단을 보면 당시 일본군 장수들이 총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1대 :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 모리 요시나리, 시마즈 요시히로 등 25,624명

제2대 : 고니시 유키나가, 소 요시토시, 다테 마사무네 등 26,182명

제3대 : 우키타 히데이에, 이시다 미쓰나리 등 18,122명

제4대 : 모리 히데토모의 13,600명

제5대 :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등 8,744명

 

이들 중에 시마즈 요시히로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가져간 인물이고, 다테 마사무네는 드라마 독안룡 마사무네에도 등장할 정도의 인물이며, 30년만 일찍 태어났으면 전국시대를 통일했을 인물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이렇게 일본군 장수들은 총출동했는데(거의 10만의 병력), 이들을 막아내기 위해 진주성에서는 누가 있었을까? 김천일과 최경회는 직접 칼을 들고 활을 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았다. 어쩌면 황진 홀로 이들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6천의 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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