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수립3] 분단은 누구의 몫이어야 하는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독립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회담을 통해 언급이 되었다.
- 카이로 회담(1943.11)
- 테헤란 회담(1943.12) - 한반도 40년간 신탁통치(루즈벨트)
- 얄타 회담(1945.2)
- 포츠담 선언(1945.7)
우리 민족으로서는 정말로 아쉬운 회담이 얄타 회담이다. 독일이 패망하기 3개월전(1945.2)에 루즈벨트와 스탈린이 만난다. 이때 루즈벨트는 독일이 패망하는데 소련이 역할을 한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현재 동남아에서 일본과 대치하고 있는 미국이 예상밖으로 고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루즈벨트가 소련의 대 일본전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였다. (소련으로서는 독일이 패망한 지 100일 안에 일본에게 선전포고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얄타 회담은 우리 민족에게는 얄밉고 얄궂은 회담이다. 한반도가 분단된 이유는 얄타회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루즈벨트와 스탈린간에 38도선에 대한 밀약(혹은 한반도 분할 통치에 대한 밀약)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이 패망한 지 100일 안에 선전포고를 하기로 한 소련은 8월이 되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었다. 몸이 달은 미국이 계속 참전을 요구하면서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게 된다. 미국으로서는 관동군을 소련에게 맡기려고 했는데 만주의 관동군이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이 미국으로서는 오판이었다) 정작 소련이 8월 8일에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한 이후에 소련의 전차부대가 일본의 관동군을 X작살내면서 만주를 통과하여 이틀 만에 한반도로 진격한 것이다. 당시 미국의 주력군을 지휘하고 있던 맥아더는 오키나와에 있었다.
이때 미국이 소련에게 38선을 제안하였다. 이 38선이 만들어지게 된 것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군사적 편의설, 일본의 유도설, 일시 분담설). 애초에 미국은 37도선을 생각하고 있었고, 소련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나가라고 하더라도 39도 이상은 점령하는 것을 우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먼저 미국이 38도선을 제안하였을 때, 소련으로서는 자신들의 생각보다 더 좋은 제안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원래 독일이 패망한 후에 동독과 서독이 나뉜 것처럼 일본이 패망한 뒤에 일본이 둘로 나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하지만, 결과는 한반도가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한반도를 분단시킨 것은 미국의 의지였다고 할 수 있다. 루즈벨트 이후 트루먼의 입장(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을 소련에게 떼어주느니 차라리 한반도를 떼어주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남의 나라 사정을 봐주면서 외교를 하지는 않는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소련의 이익과 부합했기 때문에 한반도가 분단된 것이다.
말도 안되는 코메니 같은 38선의 분단 상황에서 만약 민족의 지도자들이 뛰어났더라면, 그리고 그들이 힘을 합해서 분단을 극복하였더라면... 그런데 북한에서는 소련을 따라온 김일성이 북한이라도 장악하려고 했고,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남한만의 정부라도 세우려고 하면서 통일운동을 반대하면서 분단을 획책한 것이다. 우리는 이후 해방의 상황에서 끝까지 통일정부를 수립하려고 했던 여운형, 김규식, 김구 등에 대해서 앞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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