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7] 상주 전투 - 생존왕 이일 (20분 순삭 ver.) │황현필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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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7] 상주 전투 - 생존왕 이일 (20분 순삭 ver.) │황현필 한국사

by [수호천사] 2021.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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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초기에 일본에게 털렸던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의 문제였지, 나라를 구하려는 마음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았던 인물들은 우리가 기억해주고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동래성 전투 직후의 상황을 알려면, 당시 경상도를 지키고 있는 육군과 수군의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경상도를 책임지는 관찰사는 김수였다. 육군에는 경상좌병사 이각이었고, 경상우병사는 당시에 김성일로 교체되는 시기였다. 수군은 경상좌수영 박홍과 경상우수영 원균이었다. 박홍은 바다에서 싸우기를 포기하고 동래성에 합류했다가 도망쳤으며, 원균은 판옥선 70여척을 바다에 수장시키고 도망쳐서 동래성 전투 당시에는 등장하지 않고 있었다.

 

부산성(정발 장군 전사)과 다대포(윤흥신 장군 전사)가 함락된 후 일본군은 동래성으로 진격했다. 당시에 동래성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각 지역의 지휘관들이 동래성으로 몰려들었으나, 이각은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쳤다.

 

이각이 도망치는 장면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한 [동래부순절도]

 

동래성을 점령한 일본이 대구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밀양을 거쳐야 했다. 이때 밀양부사 박진(1560~1597)은 수백명을 거느리고 동래성에 합류하려고 했으나 이미 일본군이 동래성을 에워싸고 있어서 합류하지 못했었다. 이때 동래성에서 도망치고 있던 경상좌병사 이각을 만나게 된다. 박진은 이각에게 자신이 선봉이 되어 고니시의 부대와 싸울테니 상황을 봐서 이길 것 같으면 전방으로 합류하고 질 것 같으면 후방을 공격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이각은 돕기는커녕 도망쳤고, 박진은 패잔병을 거느리고 밀양에 와서 다시 군대를 수습해서 북상하는 고니시의 부대를 막으려고 했다. 박진은 낙동강의 상류인 작원 잔도에서 다시 고니시의 부대와 맞선다. 좁은 길이었기 때문에 소수의 병력으로 고니시의 부대를 어느 정도 저지할 수 있었고 효과적으로 고니시의 선발대를 막아냈다. 이때 고니시의 부대가 우회하여 박진의 후방을 공격하게 되고, 중과부적으로 박진은 패하고 밀양의 군수품들을 불태우고 후퇴하게 된다. (이때 김성일은 박진이 도망쳤다는 보고만 했지만 후에 박진이 열씸히 싸운 것을 증언하는 사람들 때문에 박진은 훗날 이각이 조선군에게 참수된 후에 경상좌병사가 되어, 경주성을 탈환할 때 비격진천뢰를 사용한다... 박진은 훗날 전쟁 중에 말도 안되게 어이없이 죽음을 맞게 된다... 나중에 이야기해 주겠다고 함).

 

박진 장군이 고니시에게 패배한 날이 417, 18일이었고, 처음에 경상좌수영 박홍이 일본의 침략을 장계로 올린 것이 417일에 한양에 도착하게 된다. 당시 조선의 조정은 일본이 쳐들어올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삼포왜란(1510)이나 을묘왜변(1555)의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에 미처 장계를 올리지 못하고 싸우게 되는 상황이 생겼는데, 봉화시스템이 오작동해서 한양의 조정이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알 수는 없었다.

 

조정은 당시 조선의 최고 장수 두 명을 소환한다. (신립이일) 이일을 삼도순변사(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로 임명해서 먼저 대구에 가서 북상하는 일본군을 막으라고 명했다. 그리고 신립에게 나라 전체를 관찰하는 도순변사로 임명한다. 당시 조선의 방어체계는 15세기에 세조가 만든 진관체제(자기 지역은 자기가 막아라)16세기에 명종 때 제승방략체제로 변경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먼저 조정은 이일(1538~1601)에게 한양에서 병력을 모아줬는데 기록으로는 300명 정도였다고 한다. (장난하냐?) 그런데 당시에 무기 대신 서류 뭉치를 들고 온 유생들도 있는 그야말로 전쟁을 하러 나온 건지 소풍을 하러 나온 건지 모를 정도의 오합지졸이었다. [이후 이일은 임진왜란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다. 그의 생존 본능은 임진왜란을 통해 ‘도망의 달인’, ‘생존왕’이라는 칭호를 얻기에 부족함이 없는 활약을 하였다]

 

 

이일은 이미 고니시의 부대에 함락된 대구는 포기하고 상주를 지키려고 한다. 상주는 군사적 요충지로 후삼국 시대에도 상주를 누가 차지하느냐가 매우 중요했던 지역이다. (후삼국 당시에는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가 상주를 지키고 있었고, 아자개의 딸이 고려 무장 박술희와 결혼하면서 고려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드라마 킹덤에서도 상주는 대단히 중요하게 언급된다)

 

지도에서 조령 근처가 상주

 

여하튼 병력을 여기저기서 끌어모아서 천명 정도까지 채운 이일의 부대는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않는 상태였기에 이일은 상주 근처의 강가에서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이때 농민병이 일본군이 근처에 있다고 알렸다. 이때 이일은 군심을 어지럽힌다며 그 농민병의 목을 날렸다. (다른 기록에는 농민병이 조용히 보고하지 않고 크게 떠들어서 군심을 어지럽히기에 즉각 죽이려고 했지만, 다음 날까지 기다려보자는 의견 때문에 기다렸다고 한다. 이때 따로 척후병을 보냈는데, 척후병들도 일본군인지 아닌지 애매한 상황에서 보고했다가 일본군이 아니면 농민병과 함께 목이 달아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일은 군심을 어지럽힌 죄를 물어 그 농민병을 죽였다)

 

상주성 근처 강가에서 훈련하고 있는데 상주성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부하에게 말타고 가서 알아보라고 했고, 말을 타고 출발한 병사가 얼마 가지 않아서 조총에 맞아 떨어졌고, 이후 달려나온 일본군이 달려나와 그 병사의 목을 베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순진한 농민병들이 어쩔 줄 몰라 당황하였는데 이미 일본군이 사방을 포위하여 조총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거의 학살 수준) 이일은 패배를 직감하고 말을 타고 도망쳤다. (도중에 말을 버리고 장군복까지 버리고 도망쳤다고 한다) 이일은 탄금대에 있는 신립에게 가서 백의종군하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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