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 이발사가 유령 붙은 나무 아래로 지나가는데, 문득 소리가 들렸다 :
"황금 단지 일곱 단지를 갖고 싶지 그렇지?"
이발사는 사방으로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안 보이자, 욕심이 일어 간절히 외쳤다 :
"예, 그럼요, 갖고 싶고말고요!"
"그럼 얼근 집으로 달려가 봐. 가 보면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
단숨에 이발사는 집으로 달려갔다. 아니나다를까, 단지 일곱 개가 있고, 모두 금돈이 가득했다 - 아니, 그 중 하나만은 반만 찼다.
이발사는 반만 찬 단지를 생각하면 마저 채우고 싶은 충동을 걷잡을 수 없이 느꼈다. 그걸 가득 채워 놓기 전에는 도무지 행복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발사는 자기 집 패물류를 모조리 금돈으로 바꾸어다 반만 찬 단지에 쏟아 넣었다 - 그러나 반 단지뿐이기는 매양 한가지였다. 이런 분통 터질 노릇이 있나! 이발사는 저축하고, 절약하고, 자기 자신과 식구들의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러나 일껏 애써 봐야 내나 헛일, 아무리 금돈을 갖다 넣어 봐야 단지는 그저 반 단지였다.
이제 이발사는 임금님께 봉급을 올려 주십사고 간청했다. 봉급이 배로 올랐다. 도다시 단지 채우기 싸움이 이어졌다. 나중에는 동냥질을 나서기조차 앴다. 그래도 금단지는 금돈을 넣는 족족 삼켜 버릴 분, 고집불통인양 반만 찼기는 끝내 매일반이었다.
이발사의 여위고 궁상맞은 꼴이 이제 임금님 눈에도 띄었다.
"무슨 좋잖은 일이라도 있느냐? 봉급이 적었을 적에는 그다지도 행복하고 흡족한 기색이더니, 봉급이 두 배가 된 이제는 도리어 맥이 빠져 축 늘어진 꼴이로구나. 혹시 일곱 금단지를 가진 게 아니냐?"
이발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구한테서 들으셨사옵니까, 폐하?"
임금님이 껄껄 웃었다.
"요즘 네 행색이 영락없이 금단지 받은 자의 증상 그대로가 아니냐. 일찌기 나도 그걸 받은 적이 있었더니라. 그때 난 그 돈을 내가 써도 좋다거나 아니면 그대로만 저장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는데, 그랬더니 유령은 그만 두말없이 사라져 버리더구나. 그 돈은 쓸 수 없는 돈이니라. 축적하고 싶은 충동만 따라다니며 부채질하는 것이야. 지금 당장 가서 그걸 유령에게 되돌려주도록 해라. 그러면 다시 행복해질 것이니라."
==>> 앤소니 드 멜로 [종교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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