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신각2 [임진왜란 26] 임진년 9월 대반격의 서막 - 이정암의 연안성 전투 │황현필 한국사 훗날 광해군은 연안성 전투를 임진왜란사의 ‘안시성전투’라고 표현하였는데, 연안성 전투에서의 승리한 사람은 의병장 이정암(1541~1600)이었다.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문무관료들이 공신을 책정하였는데, 선조와 함께 도망다녔던 신하들을 높여서 왕을 호위한 ‘호성공신’으로 86명을 책정하였고, 전쟁을 수행했던 영웅들을 ‘선무공신’으로 18명을 선정하였다. (이러한 선무공신에 ‘박진’, ‘황진’, ‘정기룡’ 등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선무 1등공신은 이순신과 권율, 그리고 원균(?)이었다. 2등공신에 진주대첩의 ‘김시민’, 그리고 전라우수영으로 이순신과 함께 많은 공을 세운 ‘이억기’, 그리고 연안성 전투의 ‘이정암’이 선정되었다. 이정암은 의병장이지만 원래 문신관료 출신이었다. 당시 참의(.. 2021. 4. 17. [임진왜란9] 선조의 파천과 한강 방어전 (패장은 승진, 승장은 참수?) 도대체 궁궐은 누가 불태운거야? │황현필 한국사 지도에 등장하는 별표는 선조가 도망가면서 세운 임시 수도라고 할 수 있다. 부산성, 동래성을 함락하고 밀양을 지나 탄금대에서 신립을 격파한 제1선발 고니시 유키나가와 (추풍령에서) 합류한 제2선발 가토 기요마사는 사실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제1선발 고니시가 조선의 지리를 잘 아는 부하를 가토에게 제공해준다. 그런데 가토가 허를 찔러서 새벽에 먼저 한양으로 출발하였다. 뒤통수를 맞은 고니시는 기병만 데리고 한양으로 진격하였다. 당시 한양에서는 이미 탄금대에서 신립이 패한 직후에 선조는 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운두수 같은 관료들에게 이미 튈 준비를 하라고 해 놓고 모른척 하면서 조정 대신들과 회의를 하게 된다. 이때 파천을 주장하는 이산해(1539~1609)와 목숨걸고 싸우기를 주장.. 2021. 3. 27. 이전 1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