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남기고 간 자리 *
어떤 조직이라도 그 조직의 구성원 중에는 꼭 필요한 사람과 절대필요 없는 사람, 있으나마 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한참 유명해지기 시작한 중소기업인 D주식회사 총무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들어온 지 2년이 되어 주임이 되었고, 올해 연말쯤에는 대리로 진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와 함께 입사한 김주임은 나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볼 때 조직원의 분류 중에서 별로 필요없는,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늘 사소한 일들로 시간을 보내는 적이 많았다. 무슨 잔정이 그리 많은지 후배들 뒤치다꺼리나 하기 일쑤였고, 아무도 손도 안 대는 서류함을 거의 날마다 정리하느라 퇴근 시간을 넘겼으며, 아침마다 다른 이들의 커피 심부름이나 하는 그가 내겐 너무도 무능해 보였다.
게다가 그는 남자다운 박력도 없었다. 어쩌다 상사에게 후배들 앞에서 이유없는 질책을 당하게 되었을 때도 고개를 떨군 채 견디어냈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올 땐 어김없이 커다란 쟁반에 커피 여러 잔을 들고는 "즐거운 오후 되십시오." 하며 설탕 대신에 미소 한 숟가락을 더 넣어 책상에 놓아주는 것이었다. 박력을 자랑하던 내겐 그런 그의 모습이 한심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그는 승진에서 누락될 것이 뻔하였고, 같은 동기로 들어온 나는 그런 그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휴직계를 낸 것은 그의 아내가 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박주임, 그동안 고마웠어요. 입사동기로서 끝까지 함께 있지 못해 정말 죄송하네요. 그래도 아내 병간호를 할 사람이 없으니 어쩌겠어요. 제가 몇 달은 아내 곁을 지켜 주어야 할 것 같아서요."
마음이 약한 김주임은 내 앞에서 훌쩍거리며 눈물까지 흘렸다.
'에이, 못난 인간. 그까짓 일에 눈물을 흘려?'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 있으나마나 했던 사람. 나는 자신했다. 그가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이 기회에 상사에게 나의 활약상을 확실하게 보여 주리라...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가 남기고 간 빈자리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 큰 것이었다. 아침마다 마실 수 있었던 향긋한 커피는 기대할 수 없었을 뿐더러 책상 위의 컵들엔 커피 자국이 그대로 남은 채 먼지만 쌓여 갔고, 향기 나던 화장실은 들어가고 싶지 않을 만큼 더러워졌으며, 휴지통에서는 늘 휴지가 넘쳤고, 서류들은 어디 있는지 서류철끼리 뒤죽박죽 섞여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부서내 사람들은 점점 짜증난 얼굴로 변해갔고, 서로에게 화를 내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큰소리가 오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가득했던 화평은 어느새 우리에게서 조금씩 떠나가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상사의 짜증을 다 받아내느라 기분이 몹시 안 좋은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문득 김주임이 끓여다 준 커피가 그리워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슬며시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간 것은 그의 바보스럽게 웃던 미소를 잠깐이라도 느껴 보기 위해서였다. 그때 그가 쓰던 책상 유리 속 조그만 메모지 안에 담겨진 글귀 한 줄이 내 눈에 확 들어왔다.
- 내가 편할 때 그 누군가가 불편함을 견디고 있으며, 내가 조금 불편할 때 누군가는 편안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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