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자유언론 기수 「기독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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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1970년대... 자유언론 기수 「기독공보」

by [수호천사] 2023.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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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언론 기수 「기독공보」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발간하는 주간 한국기독공보가톨릭시보의 소극적인 자세와는 달리, 일반 언론이 좌초되고 있을 때 과감한 필봉을 휘둘렀다. 70년대 전반기에 기독공보는 고군분투, 자유언론의 찬란한 발자취를 기록했다.

 

1946년에 창간된 기독공보701121일자에서 일반 신문이 다루지 않고 있던 전태일군의 분신자살을 처음으로 다뤄 급기야 커다란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 71424일자에서도 일반 언론이 전연 외면해버린 김진수사건을 크게 다루었다. 전국 섬유노조 서울의류 지부 한영섬유분회원인 김씨(당시 23)는 노조해체를 거부하다가 드라이버로 찔려 중태에 빠졌던 것이다. 홀어머니오아 여동생을 부양하고 있던 김씨는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그후 숨졌다. 7274공동성명 직후인 78일자에서는 74성명이 비밀리에 특정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과 국가 운영을 좌우하는 사건인데도 소수에 의해 결정된 점 등을 앙케이트 방법으로 비판했다. 당시 일반 언론은 흥분에 들떠 있었다.

 

73년 들어서부터 인권회복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나갔다. 73년 부활절의 박형규목사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73106일자에는 자유민주주의 정상화 희구라는 제하의 기장총회의 대정부 성명을 크게 실었다. 731124일자에는 1면에 인권침해 교회저항 시급제하의 김윤식 목사의 회견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1215일자는 역시 1면톱으로 자유민주주의 여론존중제하의 교계 지도자들이 김총리를 방문하고 요청한 사실을 보도했다.

 

7418일 대통령긴급조치가 내려져도 기독공보는 계속 필봉을 가다듬었다. 긴급조치령이 내려진 직후인 112일자는 2면에서 민의존중하는 정부염원제하로 국민의 기본적 자유 누리게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앙케이트기사를 실었다. 특히 지난 해 후반부터 확대되기 시작한 교회의 민주회복, 인권회복운동을 대대적으로 보도, 이러한 운동을 가속화시켰는데 1019일자는 예장 제55회 총회의 시국선언문구속자석방을 촉구」 「비민주적 요소 제거토록이라는 제하로 크게 보도했다. 동보는 때로는 시설로 강력한 대정부 발언을 계속했다.

 

이같은 논조로 동보 고환규 편집국장은 지난해 114일 오전 동대문서로 연행되어 조사받은 후 풀려났다가 15일 다시 연해오디어 17일 풀려났지만 서울대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고씨가 입원하자 외국 기자들과 수 많은 교인 교역자들이 몰려들었는데 당국은 병원에까지 압력을 넣어 15일만에 목발을 짚고 퇴원을 해야 했다고 고씨는 회고했다. 고씨에 의하면 당시 면회 오는 목사까지도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연재만화 김사무엘장노의 작가 이화춘씨도 같이 연행되어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국내에서는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고 다만 기독공보가 퇴원했다는 기사를 실었을 뿐이었다. 고씨는 지난 연말로 편집국장에서 NCC인권위간사로 전직했다.

 

유신체제와 민주화운동한승헌 외, (춘추사, 1984), 15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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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었던 교단의 주간지였지만, 엄혹한 70년대 독재에 맞서 굽히지 않은 언론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알아주고 기억해 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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