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의 [고구려의 역사]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왕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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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이종욱의 [고구려의 역사]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왕국인가?”

by [수호천사] 2023.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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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고대사에 대한 왜곡은 소위 진보적인 재야학계에서 비판하였고, 고대사에 대한 과장은 기존사학계에서 재야학계의 주장에 대해서 비판할 때 사용하였다. 아마도 과장이란 환단고기 등을 근거로 해서 우리 민족에 고대의 세계를 지배한 커다란 제국이었다는 주장으로 발전하기도 하는 것 같다. 고구려의 역사를 쓴 이종욱의 관점에서는 고구려 멸망은 연개소문의 쿠데타로 출발했다는 것과,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발해는 우리 역사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아래는 그중 발해에 대한 입장이다. [53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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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를 우리역사로 기록하는 것은 부당하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발해(渤海)를 아사(我史), 즉 우리 역사로 기록하는 것은 부당하다고했다. 그런데 발해를 다루는 까닭은 발해가 고구려의 옛 땅에 있으며 우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어 순치(脣齒)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발해를 한국사로 보지 않은 것이다.

현재 남한과 북한의 역사가들은 발해를 한국사로 다루고 있다. 2002년부터 국정 교과서 고등학교 국사(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통일신라 대신 남북국 시대를 설정하여 통일신라와 발해를 일대일의 비중으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발해를 대신라(소위 통일신라)와 일대일이거나, 한국사의 정통성으로 다룰 수 있나?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있어 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안정복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삼국사절요를 쓴 서거정이나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도 그러한 사람이다.

유득공이 발해고를 지은 의도는 무엇인가?

유득공은 분명 발해의 시조 대조영의 아버지 진국공(걸걸중상)이 속말말갈(粟末靺鞨)인이라 하였으며, 속말말갈은 고구려의 시하가 되었던 자들이라 했다... 대조영은 고구려 영역 안에 독자적인 부락을 가지고 살던 말갈족의 한 사람으로, 고구려에 의하여 말갈병을 거드리는 장수로 임명되었던 사람일 것이다.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은 고구려가 망한 후 말갈 추장 걸사비우와 고구려 유민을 거느렸던 것으로 나온다. 대조영도 고구려와 말갈 병사를 이끌고, 동모산에 자리잡은 후에는 말갈과 고구려 유민이 모두 그에게 돌아갔다고 하였다. 발해의 풍속은 고구려ㆍ거란과 대체로 비슷했다고 한다. 유득공 또한 대조영이 고구려의 신하가 되었던 속말말갈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대씨는 고구려인이라 하고, 대씨가 소유한 땅은 고구려땅이라 하고 있다. 유득공은 대조영은 고구려인, 발해의 땅은 고구려 땅!”이라고 외치며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던 대조영에게 고구려 시민권을 주었고 고구려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그가 그러한 이야기를 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 서문에 답이 있다. 그는 고려가 신라는 장악했지만 발해의 땅은 장악하지 못하여 그 땅이 여진족에게 들어가기도 하고, 거란족에게 들어가기도 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때에 고려를 위하여 계책을 세우는 사람이 급히 발해사를 써서, 이를 가지고 왜 우리 발해 땅을 돌려주지 않는가? 발해 땅은 바로 고구려 땅이다라고 여진족을 꾸짖은 뒤에 장군 한 명을 보내 그 땅을 거두어 오게 하였다면, 토문강 북쪽의 땅을 소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이를 가지고 왜 우리 발해 땅을 돌려주지 않는가? 발해 땅은 바로 고구려 땅이다라고 거란족을 꾸짖은 뒤에 장군 한 명을 보내서 그 땅을 거두어 오게 하였다면, 압록강 서쪽의 땅을 소유할 수 있었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끝내 발해사를 쓰지 않아서 토문강 북쪽과 압록강 서쪽이 누구의 땅인지 알지 못하게 되어, 여진족을 꾸짖으려 해도 할 말이 없고, 거란족을 꾸짖으려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고려가 마침내 약한 나라가 된 것은 발해 땅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니, 크게 한탄할 일이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유득공의 이야기를 들으면, 현재 중국에서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역사 정복에 맞서기 위해 발해고를 미리 써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유득공 자신이 쓴 발해고의 본문은 발해가 고구려의 신하가 되었던 속말말갈인, 즉 말갈족이 세운 나라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대조영이 세운 왕국은 713년에 이르러 말갈이란 칭호를 버리고 발해라고만 부른 것도 이야기한다. 옛 고구려의 땅은 698년부터 말갈의 영역이 되었고, 그 안에 살던 옛 고구려인들은 말갈(후에 발해)의 백성이 되었다.

중국인들은 고구려를 동이로, 말갈(발해)를 북적으로 보았다.

고구려가 망한 후 고구려의 옛 땅에 말갈’(발해)이라는 왕국이 들어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인들은 고구려를 동이전에서 다루었다. 그런데 말갈(발해)는 북적열전에서 다루었다. 구당서는 열전 동이에서 고구려ㆍ백제ㆍ신라 등을 다루고 있고, 열전 북적에서 거란ㆍ말갈ㆍ말해말갈을 다루고 있다. 그중 발해말갈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발해다. 신당서에서는 동이열전에서 고려ㆍ백제ㆍ신라 등을 다루고 북적열전에서 거란ㆍ흑수말갈ㆍ발해 등을 다루고 있다. 중국인들은 고구려와 발해를 서로 다른 종족이 세운 왕국으로 본 것이다.

구당서 신당서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모두 열전에서 취급한 것은 두 왕국을 모두 당나라가 아닌 당나라의 외국으로 취급한 것이다.

말갈인들에게 역사적 시민권을 주는 현대 한국사학

삼국사기삼국사절요동사강목 등의 사서에서는 발해를 한국사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재 남한과 북한에서 학문 권력을 장악한 연구자 집단이 말갈(발해) 왕국을 한국사로 만들었다.

고구려는 다종족 국가로 발전하였다. 고구려의 왕을 배출한 집단은 북부여계 이주민 집단인 고씨 세력이었다. 그 밑에 고구려의 정복을 받았던 비류국(비류나)과 같은 소국들이 비류나부와 같은 나부를 이루어 그 안의 지배 세력들이 제후적인 존재로 편제되어 그 아래의 지배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들 나부 세력들은 예맥 세력이 주를 이루었다. 그들이 고구려인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한편 고씨 세력과 예맥 계통 세력의 지배를 받던 종족 중에는 말갈족이 가장 규모가 컸다. 말갈족을 비롯한 고구려 왕국의 종족들은 고구려인으로 편입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독자적인 부락을 이루고 고구려인들보다 한 단계 낮는 신분 집단으로 살아 나갔다.

고구려 멸망 후 말갈(발해)은 말갈인을 왕으로 세워 형성된 왕국이었다... 698년 속말말갈인 대조영이 세운 말갈은 713년 대조영이 당나라로부터 발해군왕으로 책봉받으며 나라 이름을 말갈에서 발해로 바꾸었다. 그런데 한국사학은 속일본기에 나오는 발해’, ‘발해로’(渤海路), ‘발해사’(渤海使) 등의 용어는 은폐하고, 발해의 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사’(高麗使), ‘고려국왕’(高麗國王)이라고 하였다는 기록 등이 있다 하여 발해를 고구려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발해는 고구려가 아닌 말갈에서 출발한 왕국이었다. 따라서 발해는 기본적으로 말갈, 후에는 발해라는 국명으로 신라ㆍ중국ㆍ일본에 알려진 왕국이다.

현대 한국사학은 고구려 왕국에서 고구려의 지배를 받으며 독자적으로 살아가던 말갈족에게 역사적 시민권을 주고 있다. 그러나 발해 왕국이 형성된 후 과거의 고구려인들은 말갈족 국왕의 지배를 받게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설령 발해 왕국의 지배 세력 중에 옛 고구려인들이 있다 하더라도 말갈족 국왕의 지배를 받았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발해인들이 고구려식 기와를 사용하고 온돌을 사용하였기에 발해가 고구려를 이은 왕국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역사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발해를 한국사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있다. 1945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인에 의해 한국사가 만들어질 때 발해는 부록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후반에 발해가 통일신라라는 장의 뒤쪽에 하나의 절로 끼어들었다. 그리고 2002년 편찬된 국정 교과서 국사에 남북국 시대가 설정되며 발해(북국)는 통일신라(남국)와 대등한 비중을 갖고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사학이 발해를 한국사로 승격시킨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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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지배층이 말갈족을 거드리고 세웠다고 하는 발해는 오늘날 현대 국사에서는 당연하게 우리 민족에 세운 나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고구려의 역사를 쓴 이종욱은 발해를 우리 역사로 기록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어떤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는 책을 읽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지만, 나름 (지금으로서는) 신선한(?) 주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발해의 역사에 대해서 너무 소홀하게 다루기도 했고,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만 언급하는 수준의 한국사 교육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해는 우리 역사다!’라고 주장하려고 해도 너무나 우리에게 전해진 발해사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단순히 삼국통일 후에 쪼그라든 우리 민족의 영역에 대한 아쉬움으로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했던 발해를 우리 역사로 편입시킨 것이라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의 역사적 상식의 수준은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나라를 세운 것이 발해라는 것과 발해의 피지배층은 (우리 민족과는 조금 다른) 말갈이라는 민족이라는 것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발해라는 나라는 고구려가 망한 후에 나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강력한 의지는 있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말갈족도 이전 고구려라는 나라에 소속된 (물론 피지배층이었다고 하지만) 민족이었기 때문에, 발해가 전혀 우리 민족과 상관없는 국가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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