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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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53] 복직 후 달라진 이순신 - 선조 들이받다. [임진왜란53] 복직 후 달라진 이순신 - 선조 들이받다. 칠천량해전(1597.7.15~16)으로 조선 수군은 궤멸되고 일본이 제해권을 장악하게 된다. 일본군은 처음으로 전라도로 진격해서 남원성을 점령(1597.8)했다. [칠천량해전 소식을 들은 이순신] 『난중일기 7월 18일』 맑다. 새벽에 이덕필과 변홍달이 와서 “16일 새벽 어둠이 걷히기 전, 수군이 기습을 당하여 통제사 원균과 전라 우수사 이억기, 충청 수사 최호 그리고 여러 장수들이 많이 피해를 입었으며 수군은 크게 패하였습니다” 하였다. 듣고 있으니 울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조금 있다가 원수가 와서 “일이 이미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소” 하였다. 오전 10시께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어떻게도 의견을 정할 수가.. 2021. 4. 30.
[임진왜란51] 원균 은둔설? [임진왜란51] 원균 은둔설? 세계 해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칠천량 해전(1597.7.15)의 주인공 원균... 이순신의 한산도의 승리보다 더 큰 패배를 안겨준 장수... 그는 과연 칠천량에서 죽었을까? 박정희가 이순신을 존경한다고 하면서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을 세우고 자신을 이순신과 등치시키려는 것은 솔직히 코메디라고 생각된다. 상식적으로 박정희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순신은 어려운 가운데 권력을 차지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북한의 김일성은 자신을 연개소문과 등치시키려 했다. 어찌보면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으니 박정희는 차라리 연개소문을 존경한다고 했어야하지 않을까? 물론 이후 연개소문.. 2021. 4. 28.
[임진왜란10] 임진강&대동강 방어전(광해군 분조를 이끌다)-절대순삭ver. │황현필 한국사 일본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서둘러 한양을 점령하고 조선왕을 잡게 되면 전쟁이 빨리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일본의 100여년의 전국시대 전쟁의 패턴은 성주가 항복하거나, 할복하면 전쟁이 끝나는 것이었다. (최후까지 항전하면 그 지역은 철저하게 도륙하였으나, 기본적으로 백성들은 전리품으로 생각하고 처음에는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성주가 도망친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조선의 왕인 선조는 일본군의 허를 찔러 가장 용감하게 도망쳤다. (이것이 임진왜란에서 선조가 한 가장 뛰어난 활약이었다... 손자병법의 36계 줄행랑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게 가장 충격과 멘붕을 선사했다...) 선조가 도망친 이후에 일본군은 멘붕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한양을 점령한 이후에 곧바로 북진하지 못한 것은 이순.. 2021. 3. 31.
[임진왜란9] 선조의 파천과 한강 방어전 (패장은 승진, 승장은 참수?) 도대체 궁궐은 누가 불태운거야? │황현필 한국사 지도에 등장하는 별표는 선조가 도망가면서 세운 임시 수도라고 할 수 있다. 부산성, 동래성을 함락하고 밀양을 지나 탄금대에서 신립을 격파한 제1선발 고니시 유키나가와 (추풍령에서) 합류한 제2선발 가토 기요마사는 사실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제1선발 고니시가 조선의 지리를 잘 아는 부하를 가토에게 제공해준다. 그런데 가토가 허를 찔러서 새벽에 먼저 한양으로 출발하였다. 뒤통수를 맞은 고니시는 기병만 데리고 한양으로 진격하였다. 당시 한양에서는 이미 탄금대에서 신립이 패한 직후에 선조는 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운두수 같은 관료들에게 이미 튈 준비를 하라고 해 놓고 모른척 하면서 조정 대신들과 회의를 하게 된다. 이때 파천을 주장하는 이산해(1539~1609)와 목숨걸고 싸우기를 주장.. 2021. 3. 27.
[임진왜란3]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해도 악연이다. │황현필 한국사 [임진왜란 2]에서 조선의 창인 삼지창(당파)는 임진왜란 이후에 사용되는 것이라는 네티즌의 지적이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 임진왜란 이후라는 것은 임진왜란도 포함된다는 의미라고 알려준다. 명나라에서는 왜구가 절강성을 침입(1553)했을 때, 당시 척계광이 ‘절강병법’을 만들어서 12명이 일본 왜구 1명을 막아내게 하면서 두 명이 당파를 들고 일본의 긴 창을 막아내게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당파의 용도는 1대 1로 맞장을 뜨려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긴 창을 막아내는 것으로 사용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이 이 당파를 조선에 가지고 들어왔고, 정유재란 때 조선군의 거의 대부분이 창으로 당파를 사용했다. (조선 전기의 내용을 담은 사극에서 당파를 들고 있는 모습은 역사적 오류가 확실하다) 조선.. 2021. 3. 18.
[임진왜란1] 조선vs일본 전력 전격 분석, 조선이 초반에 털린 이유 │황현필 한국사 유투브에서 자주보는 한국사에 대한 강의 영상 중에 ‘임진왜란’에 대해서 황현필이라는 강사가 강의한 영상이 있다. 이 영상은 한 번 보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라 이곳에 정리를 해 두려고 한다. 과연 임진왜란은 이긴 전쟁인가 vs 패배한 전쟁인가? 조선의 입장에서는 ‘졌지만 지지 않은 전쟁’이라고 할 수 있겠고,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겼지만 이기지 않은 전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억울한 것은 전쟁이 조선 땅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입은 피해가 상당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식량의 차이는 일본이 조선의 두배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식량을 소비하는 차원에서 본다면 조선이 일본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까지 일본은 하루에 두 끼를 먹었다고 .. 2021.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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