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발생과 주요 고대 문명 총정리
문명의 발생과 주요 고대 문명 총정리
[1] 문명이란
문명이란 인류가 농업, 정착 생활, 기술, 정치,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발전하면서 형성한 복잡한 사회 체계를 말한다. 세계의 주요 문명은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다양한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했으며, 그 흔적은 오늘날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세계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시작으로, 이집트, 황하, 인더스, 서유럽, 아메리카 대륙에서 형성된 주요 문명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그동안 교과서에서는 세계 4대 문명만 소개되고 있었지만,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도 문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2] 메소포타미아 문명
1) 도시의 발달
기원전 4000년 후반기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문명이 발생했는데, 서아시아에서 처음 발생했고 그 다음에는 북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서 이어서 발생했다. 문명은 또한 기원전 2000년 초 중국에서도 나타났다. 기원전 3000년경에 세계 최초의 도시 문화가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그리스어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는 ‘강 사이에 있는 땅’이라는 의미이다) 남부에서 발달하기 시작했다. 유프라테스(Euphrates) 강 하류의 평원에서 관개시설이 개발된 후 기원전 6200년경부터 농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원전 3500년경에는 농업 공동체들이 읍으로 발전하다가 이후 우르(Ur), 우루크(Uruk), 에리두(Eridu) 등의 도시로 발달하고 있었다. 이후 300년이 지나, 각각의 도시는 주변 지역을 지배하게 되어 메소포타미아 남동쪽의 수메르(Sumer)라 불리는 지역에서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집단을 형성했다.
2) 계층사회의 발달
기원전 6000년경에는 금속세공술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3200년경에 수메르의 대장장이들이 청동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5000년경 이후 쟁기가 사용되었고, 기원전 3500년경부터 바퀴가 달린 수레가 사용되었으며, 그런 발전으로 농작물은 더 많이 생산되었다. 그 결과 식량과잉은 일부 사람들을 농업에서 벗어나게 하여 사제, 공예, 무역, 행정 등의 직업으로 전문화 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계층사회가 발달했는데, 때로는 루갈(lugal)이라 불린 왕들이 그런 사회를 이끌었다.
3) 교역과 문자의 발달
메소포타미아 남부에는 40여 개의 도시국가들이 한데 모여 있었는데 그 중 우르, 우루크, 니푸르, 키시가 가장 중요했다. 강과 수로를 이용한 교역이 번창했고 통상관계는 곡류, 광물, 목재, 도구, 선박 등의 교역으로 아나톨리아(오늘날의 튀르키예), 이란, 아프가니스탄까지 확대되었다. 수메르의 인구는 대부분 도시인이라는 점에서 특별했다. 우르와 우루크를 비롯한 다른 중심지에서는 사람들이 군집을 이루며 진흙 벽돌로 만든 집에서 살았다. 도시의 중심부에는 지구라트(ziggurat)라는 계단식의 신전 탑이 종교적인 의식을 위한 중심이 되어 있었고, 그 신전의 경내 저장실에 곡식이 저장되어 있었다. 기원전 2500년경부터 우르의 일부 시민들은 ‘우르의 군기(Standard of Ur)’ 같은 보물과 함께 무덤에 매장되었다. 우르의 군기에서 양측 복잡한 판자들의 용도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데, 아마도 리라(고대의 현악기)의 공명통으로 만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경제와 행정 기록을 보관하기 위해 생겨난 최초의 상형문자는 기원전 3300년경 수메르에서 발달했다. 상형문자는 기원전 2900년에 설형문자로 발달했는데, 이는 필경사가 쐐기 모양의 문자들을 남기기 위해 부드러운 점토에 뾰족하게 깎은 갈대들을 누르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메소포타미아 남부는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 천연자원이 부족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영토와 물을 획득하려는 싸움이 생겨났고 도시 간의 동맹이 맺어지거나 깨졌다.
4) 도시국가간의 경쟁
기원전 3000년의 후반기 서아시아에서는 메소포타미아가 계속해서 작지만 강력한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도시국가들은 각각 보리, 콩, 대추야자를 경작하는 주변 농지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서쪽에서는 도시국가들이 시리아와 레반트(Levant)에서 발달하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을 연결하는 교역망은 도시국가 간의 협력을 나타내지만 또한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음을 암시한다.
[3] 이집트 문명
1) 나일 강의 범람
이집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고대 문명 중 하나가 기원전 3100년경에 나일(Nile) 강 유역을 따라 생겨났다. 나일 강 유역은 경작할 수 있는 좁고 긴 땅으로 범람원을 이루었는데, 이는 해마다 발생하는 강의 홍수로 강 유역을 따라 검은 토사가 퍼졌기 때문이다. 매년 이집트의 농경은 범람이 가라앉는 가을에 시작되었고 농부들은 그 비옥한 땅에 밀, 보리, 콩, 편두를 경작했다.
2)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통일
기원전 4000년 말기에 이집트의 농경 공동체는 두 왕국, 즉 남쪽의 상이집트(Upper Egypt)와 북쪽의 하이집트(Lower Egypt)로 발달했다. 기원전 3100년에 나르메르(Narmer) 왕이 두 왕국을 통일했다. 나르메르가 메네스(Menes)가 된 후(역사가들은 메네스가 나르메르의 후계자인지, 나르메르 자신의 다른 이름인지 알아내지 못했지만), 메네스는 멤피스(Memphis)에서 이집트의 수도와 이집트 최초의 왕조를 설립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3) 초기 왕조 시대
메소포타미아에서처럼 이집트에서도 효율적인 농업이 번영과 전문화를 이끌어 예술, 공예, 공학, 초기 의술 등이 발달했다. 초기 왕조 시대(Early Dynastic Period, 기원전 3100년경-기원전 2686년)에 상형문자, (내세의 믿음을 포함한) 복잡한 종교,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보존하는 기술 등 이미 이집트 문화의 잘 알려진 측면들로 특징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반은 신성시되는 최고의 위치에 있는 왕을 포함한 복잡한 계급사회가 발달했다. 이후 파라오로 불리는 이집트의 왕들은 행정장관이나 고관, 지역 총독들 등의 고위층과 사제, 조세 징수원, 필경사 등 보다 낮은 거대한 관료집단의 도움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4) 고왕국 시대와 피라미드 건설
이집트에서는 사낙크트(Sanakht) 왕이 기원전 2686년 왕위에 올라 세 번째 왕조(Third dynasty)와 고왕국(Old Kingdom) 시대(강력한 중앙집권 통치와 피라미드 건설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 웅장한 기념물들은 왕릉으로 세워졌다. 초기 왕조 시대에는 왕이 석실분묘(mastabas)라 불리는 직사각형의 진흙 벽돌 제단 아래 매장되었다. 기원전 2650년경에는 최초의 피라미드가 조세르(Djoser, 기원전 2667-2648년경 재위) 왕을 위해 완성되었다. 건축가 임호텝(Imhotep)이 설계한 이 피라미드는 여섯 개의 석실분묘 맨 윗부분이 서로 유사하게 만들어졌다.
뒤이어 각형 피라미드가 나타났는데, 그 중 가장 위대한 피라미드는 기자(Giza)의 세 피라미드였다. 이 놀라운 공학의 위업은 한때 노예가 만든 것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전업 장인들과 나일 강의 범람기에 징발된 농부들로 보완된 석공들이 이루어낸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돌덩어리들(6~10톤의 나지막한 돌과 1~2톤의 높은 돌)을 인근 채석장에서 잘라 썰매를 사용하여 해당 장소로 끌고 간 다음, 그것들을 경사로 끌어올리면서 점점 높이 쌓아 구조물을 완성했다.
[4] 황하 문명
중국에서는 문명이 황하 강과 같은 동부의 강 유역에서 생겨났는데, 그곳에서 풍부한 풍적토가 비옥한 땅을 만들었다. 기원전 8000년에 허난 지방의 양사오 주변 지역에서는 이미 기장이 경작되고 있었다. 기원전 2400년경에는 이웃의 다원커우(大汶口) 문화가 상동 지방의 롱샨(龍山) 문화로 발달했다. 롱샨 농부들은 관개시설을 개발한 후 벼를 경작했다. 다른 초기 문명들처럼 이곳에서도 농업의 성공으로 정교한 사회가 발달하게 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에 중국의 장인들은 청동 도구를 만들고 있었고, 기원전 2700년경에는 옥으로 된 선박을 제조하고 있었으며, 기원전 3500년경에는 견직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5] 인더스 문명
1)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인더스 강 계속의 문명은 홍수를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원전 4000년에 남아시아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원전 2600년경 인더스 평야에는 수십 개의 읍과 도시들이 생겨났다. 그 중에서 인더스 강 유역의 모헨조다로(Mohenjo-daro)와 북동쪽의 하라파(Harappa)는 각각 약 10만 명과 6만 명의 인구를 가진 중요한 곳이었다.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 문명이 장년기(Mature phase)로 나타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1천 700킬로미터(1천 60마일)까지 확대되었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1천 300킬로미터(800마일)까지 확대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농업, 채굴, 공예, 교역 등에 기반을 두고 번창했다. 모헨조다로, 하라파, 돌라비라(Dholovira) 등의 도시들을 포함한 100여 개 이상의 유적지들이 발굴되었다.
2) 계획된 도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는 격자형 체계로 배치된 잘 계획된 도시들이었다. 각 도시는 벽돌담으로 보호되었고 1층이나 2층으로 된 공공건물과 집들로 이루어진 이른바 ‘나지막한 도시’를 내려다보는 한 성채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 거주 지역들은 표면상 도자기, 구슬 제조, 금속세공 등의 산업으로 나뉘어 있었다.
3) 진보된 배수시설
인더스 문명의 도시와 마을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배수시설을 갖추었는데, 이는 배수판이 가려진 채 우물을 둘러싸고 있었다. 또한 화장실은 거리 밑으로 흐르는 배수관으로 오물을 비우도록 되어 있었다. 이 도심지는 또한 광범위한 통상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다. 상인들은 광석, 보석, 목재 등에 대한 대가로 공예품을 인더스 강 계곡에서 주변 지역으로 공급했다. 먼 거리 교역으로는 멀리 메소포타미아와 아프가니스탄까지 이어졌다.
4) 수수께끼의 인더스 문자
기원전 2500년경에는, 수백 개의 기호로 된 인더스 문자가 인장과 도자기에 나타났다. 그 문자를 해독하는 시도는 실패했기 때문에 이 문화의 많은 부분이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6] 서유럽의 문명
1) 미노스 문명
기원전 3000년경에 서아시아에서는 청동기시대가 진행중이었는데, 어쩌면 그보다 상당히 일찍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 유럽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2500년경부터 중부 유럽의 카르파티아(Carpathian) 산맥에서 광석자원들을 사용하면서 독립적으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에 또한 기원전 2000년경 그리스의 크레타(Crete) 섬에서 미노스(Minoan) 문명이 시작되었고, 가까운 키클라데스(Cyclades) 섬과 더욱 넓은 지중해와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2) 거석묘의 등장
서유럽에서는 초기의 거석묘를 세우는 전통과 천체관측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스톤서클 건설, 열석, 스탠딩스톤(나란히 줄지어 늘어선 거석들), 천문학적인 특징을 포함한 무덤 등 새로운 거석문화가 생겨났다. 이러한 문화에는 아일랜드의 뉴그레인지(Newgrange), 잉글랜드의 스톤헨지(Stonehenge), 프랑스의 카르나크(Carnac) 등이 포함되어 있다.
[7]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
1) 안데스 문명
아메리카 대륙에서 문명의 최초 흔적은 기원전 2800년경에 안데스 산맥과 페루의 해안을 따라 나타났다. 안데스 문명의 농부들은 감자와 퀴노아(quinoa)라는 곡물을 재배했고 알파카와 라마를 길렀다.
2) 제사 센터(카랄, 아스페로)
해안에는 어촌 공동체가 있었지만 내륙 도시는 진흙 벽돌로 된 신전 제단 주변에 세워진 제사 센터가 되었다. 특별한 제사 센터로는 기원전 26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리마(Lima)에서 약 200킬로미터(125마일) 떨어진 카랄(Caral)이 있다. 또 다른 제사 센터인 아스페로(Aspero)는 사원들을 쌓아놓은 6층으로 된 제단 구조물이 있었다. 그 지역에서는 목화가 재배되었고 기원전 2700년경에 옥수수가 경작되었다.
[8] 결론
고대 문명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 인간 사회의 뿌리이다. 강을 중심으로 한 정착과 농경, 문자와 기술, 사회 조직, 종교의 등장은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되었으며, 그 흔적은 지금도 문화ㆍ건축ㆍ종교 등 여러 면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명들의 발전사를 통해 인류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적응력이 뛰어난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