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괄의 난'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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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의 난2

[병자호란4] 이것이 정묘호란이다.(옷에서 잡음이ㅠ) [병자호란4] 이것이 정묘호란이다.(옷에서 잡음이ㅠ)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하자(1616년) 명나라는 후금이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해서여진의 예허부와 조선과 함께 후금을 공격하였다(1619년, 사르후 전투). 사르후 전투에서 누르하치가 승리하면서 만주(요동과 요서)를 완전 장악하게 된다. 사르후 전투 당시 조선의 군주는 광해군(1608~1623)이었다. 광해군은 후금과 명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하려고 했다. 당시 조선의 관료들은 임진왜란(1592년) 당시에 명나라의 도움을 받았으니 ‘재조지은’(再造之恩, 나라를 다시 만들어준 은혜)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광해군은 당시 상황으로 파병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비변사 뿐만 아니라 삼사의 젊은 관료들까지 나서서 파병을 해야 .. 2021. 5. 12.
[임진왜란32] 함경도를 탈환하다 (Feat. 북관대첩비) 끝까지 보셔야 할 영상 │황현필 한국사 정문부 장군의 하이라이트는 북관대첩(1592.9~1593.2)인데 이 북관대첩은 정문부가 함경도를 수복하면서 승리한 여러 전투를 총칭한 명칭이다. “함경도의 적세는 다른 도보다 강합니다. 안변에서 육진까지 모두 왜장을 배치하고 각기 3~4백명의 군사를 주둔시켰으며, 또 민간에 사람을 내보내 필요한 물건들을 날마다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요해처에는 복병을 많이 배설하여 사람들이 통행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살육과 약탈이 끝이 없습니다. 우리 백성들은 모두 분발할 것을 생각하면서 애타게 중국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조수정실록』 길주 이북의 상황이 궁금한 일본군은 길주에서 최정예병력 92명을 경성 근처까지 보내보지만, 정문부가 92명을 다 잡아서 죽여버린다(경성전투, 1592.9.16). 장평(장.. 2021.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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