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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제2

[삼국통일4-2] 살수대첩(본편)-둘 중에 하나는 망하는 전쟁(사라진 을지문덕과 이름 없는 요동성주) [삼국통일4-2] 살수대첩(본편)-둘 중에 하나는 망하는 전쟁(사라진 을지문덕과 이름 없는 요동성주)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 병력은 113만 명이었다. 이 병력은 정규군 30만에다가 보급병을 합한 숫자라는 이야기가 있고, 정규군이 113만 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113만 병력이 고구려 원정을 떠나는데, 선발대가 출발한 뒤 후발대가 출발할 때까지 40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선발대와 후발대의 간격은 960리(400km)였다고 한다. 오늘날로 따지면 선발대가 서울에서 행군하고 있으면 후발대는 부산에서 행군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13만의 숫자는 어쩌면 당시 고구려 인구를 200만으로 봤을 때, 절반의 인구에 해당하는 것이고 고구려 남자 전체인구에 해당하는 병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 2021. 7. 4.
[삼국통일4-1] 살수대첩(서막)-요서에서 증발해버린 수나라 군대 30만의 미스테리(13분 순삭Ver.) [삼국통일4-1] 살수대첩(서막)-요서에서 증발해버린 수나라 군대 30만의 미스테리(13분 순삭Ver.) 살수대첩(612년) 위진남북조를 360년 만에 통일한 수나라 문제(541~604, 재위 581~604)의 통치는 ‘개황의 치’(581~604)라 불리는 데 위진남북조의 혼란기를 수습하며 국가를 안정시켰다. 당시에 동돌궐과 거란 등도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에게 납작 엎드릴 정도였다. 수나라 문제는 다른 나라 왕들에게 입조(入朝)를 요구하였다. 그런데 고구려 영양왕(?~618)은 입조를 거부하였다. 이때 문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요하가 장강보다 넓더냐?” 자신은 양쯔강(장강)을 넘어 진나라를 멸했는데, 요하 쯤을 건너가는 건 식은 죽 먹기라는 말이었다. 영양왕(?~618)은 평강왕의 아들로 수나라의.. 2021.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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