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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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3

[근대20] 동학3 - 우금치 전투(눈물 주의 그러나 멋있음) [근대20] 동학3 - 우금치 전투(눈물 주의 그러나 멋있음) 1894년 4월 동학농민군 1차 봉기 : 반봉건 1894년 9월 동학농민군 2차 봉기 : 반외세 1차 봉기 때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은 전봉준에게 반대하였다. 그런데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노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내자 2차 봉기 때는 최시형도 동참하기를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최시형의 명을 받은 손병희가 북접을 이끌고 논산으로 내려왔고, 남접의 전봉준과 연합하였다. 논산에서 2만 명의 동학군이 죽창 들고 짚신 신고 공주로 진격해 올라갔다. 이때 조선 정부에서는 관군과 일본군이 진압하러 내려왔다. 동학군은 우금치 고개에 매복해 있는 관군과 일본군을 정면돌파해서 뚫고 진격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당시 조선 관군은 미국에서 만든 신식무기(개틀링 기.. 2021. 7. 2.
[근대19] 동학2 - 백성 잡자고 외국 군대 끌어들이는 왕과 왕비 [근대19] 동학2 - 백성 잡자고 외국 군대 끌어들이는 왕과 왕비 동학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것은 동학농민운동이 조선역사상 가장 큰 민란이라는 것이고, 조선왕조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뿌리(전주 이씨)가 있는 곳을 점령당한 것을 의미하였다. 이때 고종이 먼저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이자는 제안을 하였고, 당시 관료들이 반대를 하였다. (민씨척족정권의 관료들조차 반대하였다고 한다). 만약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인다면 텐진조약(1885)에 입각해서 일본 군대도 조선땅에 들어오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조선 땅이 양국의 전쟁터가 될 것이기에 반대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고종과 민비는 당연히 청나라가 이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0년 전과는 달리 국력이 성장한 일본은 청나라와 한판 뜨고 싶었지만 명분이 없었기 .. 2021. 6. 30.
[근대18] 동학1 - 남도퍼레이드(황토현&황룡촌 전투) [근대18] 동학1 - 남도퍼레이드(황토현&황룡촌 전투) 아프고 슬픈 역사이지만 자랑스러운 역사 ‘동학농민운동’ 1894년 1월에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저항하여 고부민란이 발생하였다. 조정에서는 안핵사 이용태(1854~1922)를 파견해서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하였는데, 이용태는 조병갑 편을 들면서 전봉준을 잡아들이라고 명령을 하였다. 이에 전봉준과 김개남, 손화중 등이 3월에 백산에서 모였는데 이때 8천명이 모였다고 한다. 이들의 구호는 ‘보국안민’, ‘제폭구민’이었으며 주동자가 누군지 모르게 하기위해서 ‘사발통문’을 이용하였다. [전봉준의 격문] 우리가 의(義)를 들어 여기에 이르렀음은 그 본의가 결코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 중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대 두자 함이다. 안으로는 탐.. 202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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