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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카와 다카카게3

[임진왜란35] 걔네들 기준 임난 3대 승리 중 으뜸 - 벽제관 전투│황현필 한국사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1592년 4월) 두 달만에 평양성을 빼앗겼다가(1592년 6월) 6개월만에 평양성 탈환하게 되었다. 이때 명나라 군대가 평양성에서 1만여 명의 수급을 베었다고 한다. 이 1만여 명의 수급에는 상당수 조선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평양성에는 순왜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때 명나라 조정에서는 조선인을 죽인 것에 대해서 문제를 삼게 되어 이여송이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이때 명나라 부대가 절실했던 조선의 조정에서 이여송을 변호해 주는 일이 있었다. 평양성에서 후퇴한 고니시의 전투목록은 아래와 같이 임진왜란 초기의 대부분의 전투를 고니시의 부대가 치렀으며, 그 와중에 조금씩 병력의 손실이 생겼을 것이다. 18,700명의 병력으로 참전했던 고니시의 부대가 한양으로 살아돌아갈 때 불과 5.. 2021. 4. 24.
[임진왜란 24] 의병장 총집합 - 곽재우, 고경명, 김천일, 조헌, 정문부, 서산대사, 사명당...그리고 김덕령 │황현필 한국사 이순신은 5월부터 7월까지 총 3번 출정한다. 1차 출정에서 옥포(5.7), 합포(5.7), 적진포(5.8)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2차 출정 때 사천(5.29), 당포(6.2), 당항포(6.5), 율포(6.7)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3차 출정에서는 한산도(7.8), 안골포(7.10)에서 승리하면서 완전히 해상을 장악해 버렸다. 왜군은 육지를 통해 호남을 공략하려고 했으나 웅치(7.7)와 이치(7.8)에서 황진 장군의 영웅적 활약으로 물러나면서 호남이 지켜졌다. 이순신이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라고 말했지만, 호남을 지키기 위해서 호남만 노력한 것이 아니었다. 충청도와 경상도의 여러 의병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임진왜란 초창기에 일본이 압도적인 승리.. 2021. 4. 17.
[임진왜란23] 호남방어전(웅치.이치전투), 육전 최고의 승리? 영웅 이름? 4대대첩으로 바뀌어야 │황현필 한국사 조선이 일본에게 멸망당하지 않았던 전투는 무엇일까? 임진왜란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 웅치전투(1592.7.7)와 이치전투(1592.7.8?)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만약 황진(1550~1593)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임진왜란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왜군이 한반도에 상륙해서 20일 만에 한양에 입성했는데 왕이 도망치고 없었다. (이것이 왜군에게는 멘붕이었다고 한다) 이후 누가 왕을 잡으러 갈 것인가를 놓고 제비를 뽑았는데 고니시가 이겨서 고니시가 선조를 추격하기로 하고, 가토는 함경도쪽으로 가기로 했다. (가토는 함경도에서 선조의 아들 임해군을 잡기도 했다) 4군단 시마즈 요시히로(1535~1619)는 강원도로 진격했고, 3군단 구로다 나가마사(1568~1623)는 충청도를 .. 2021.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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